심리학박사

“뜬금없이 눈물이 나.” “울컥 화가 복받쳐.” “왠지 불안해.”

어떤 감정이, 어떤 충동이 불쑥 튀어 오를 때가 있다. 나답지 않게스리….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이 뜬금없는 나는 누구일까?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솟아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정은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 이전의 언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나타내는 계기판이다. 슬픔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음을, 분노는 욕구가 심하게 손상되었음을, 불안은 욕구가 위협받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국 그 길은 막히고 만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의욕 상실, 무의미함, 공허함에 사로잡히며 “아, 나는 누구인가”라고 한탄하게 될 수도 있다. 뜬금없다거나 나답지 않다는 느낌은 우리의 의식이 감정과 충동을 따라잡지 못할 때 발생한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이 억압과 거부 등으로 인해 의식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누르고 참는 것을 성숙한 감정조절과 혼동한다. 감정과 충동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애린에 물들지 않는’ 바위 같은 사람, 이것은 수사로는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참 큰 걱정이다. 성숙한, 건강한 감정조절은 흔들리며 흔들리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 의미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림을 보아내는 사람이, 사랑을 참고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욕망의 한복판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보아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 모두를 남들 앞에 내놓을 수는 없다 해도, 그들은 몰라준다 해도 적어도 나만은 알아주면 좋겠다. 불쑥 말을 걸어오는,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을 “아, 이런 감정이, 이런 마음이 내게 있었구나”라고 다독여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자신이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응답자의 신상이 가려진 익명의 심리학 연구에서조차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대답을 하는 경향이 나타날 정도다. 기실 우리들은 남들이 내게 원한다고 믿는 모습,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는 모습 이외에는 가능한 한 누르거나 감추거나 삭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중의 하나가 감정이다. 우리는 최대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최대한 행복한 사진을 포스팅하며 남들이 꺼릴만한 진짜 감정을 숨기려 애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스마일증후군에 이를 만큼 말이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억압하고 거부하는 한,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는 한, 타인 특히 피붙이, 살붙이와 잘 지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대하는 식으로 ‘또 다른 나’인 그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그들을 괴롭히며, 혹독하게 대하곤 한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그럴 수 없이 좋은 사람인데, 가까이 갈수록 까다롭고 힘든 모습이 드러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천지사방 꽃 흐드러진 이 계절에 가족 모두가 사랑하고 웃는 예쁜 그림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실제로 많은 피붙이 살붙이들은 이즈음 그 어느 때보다 더 서로 엉켜 이리 치고 저리 치인다. 그들에게 5월은 서로의 기대와 원망과 욕망이 부딪히며 덜그렁대는 달이며, 해묵은 상처를 헤집어대는 달이다. 1인 가족, 1인 가구가 대세인 요즈음 가족 중의 가족인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따뜻한 가정의 품이 되어보면 어떨까. 가족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받고 싶었지만 끝끝내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자신에게 주면서 스스로 넉넉한 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5월에는 좀 더 자신에게 친절해지자.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