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걸음 - 청주 문의면 청남대 (19구간)

#. 현대사 깃든 남쪽 청와대

전두환 정권시절 1983년 완공
20년간 역대 대통령 별장으로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면 그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를 보라고. 권력이란 욕심은 사람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권력이 없을 땐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고 살 것 같지만 막상 권력을 잡으면 주지육림의 삶을 사는 게 인간의 본성이란다. 가장 적합한 예가 한(漢)나라 말 동탁(董卓)이다.

동탁은 사실 북방의 이민족과 싸우며 한나라 황실에 충성을 다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수도에 입성한 뒤 당시 황제였던 유변(劉辯)을 홍농왕(弘農王)으로 좌천시키고 자신의 꼭두각시가 될 진류왕(陳留王)이었던 유협(劉協)을 황제에 앉혀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이 모든 걸 독점했다.

남쪽의 청와대는 권력자를 위한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개방돼 누구나가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이곳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당연히 동탁이 되고 싶어진다.

 

#. 국민 관광지로 자리매김

2003년 참여정부때 일반 개방
역사 자연 조화, 알찬 힐링명소

 

 

◆대청호오백리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아쉽게도 봄은 오자마자 갈 채비를 마치고 그 자리를 여름이란 녀석이 채우려 한다. 그래도 내심 아쉬운지 봄은 비를 뿌리고 꽃가루를 날리며 여전히 아직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변덕을 부린다. 그 변덕이 때론 불편하지만 누가 뭐래도 봄은 계절의 여왕이다.

계절의 여왕과 권력을 독점한 이들을 위한 곳, 그리고 대청호. 이들의 삼위일체는 근위병같이 우뚝 솟은 아름드리 백합나무 가로수로부터 시작한다.

청남대는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주변 환경이 빼어나다는 의견을 냄에 따라 1983년 6월 착공돼 12월에 완공됐다. 

역대 대통령은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청남대를 이용해 20여 년 동안 총 88회 400여 일을 이곳에서 보냈다. 

대통령별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부터 김해를 비롯해 전국에 총 네 군데가 있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모두 폐쇄하고 청남대 한 곳만 남겼다. 20년 동안 비공개였던 청남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2003년 4월 18일 충북도로 이양돼 일반에게 개방됐다.
 

20년의 비밀을 간직한 청남대의 가로수길은 그 누구의 손때를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한다. 신록의 시원한 푸른 나무 사이로 대청호를 반사시킨 햇살이 더해 비록 백합나무 그늘 속에 있어도 눈부심을 느낀다. 약 3㎞에 달하는 가로수길이 끝나면 남쪽의 청남대 입구가 나온다.

청남대는 비록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부지면적만 184만 1400㎡에 달하는 만큼 섣불리 이동하기 겁이 난다. 이제 막 청남대에 도착해 체력이 온전한 상태여서 가장 먼저 전망대로 향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길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김대중 대통령길 입구에 서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지만 힘들진 않다. 온도가 높지만 신록의 가림막이 햇살을 막아주는 데다 주변에서 불어오는 호수바람이 몸을 가볍게 한다. 발을 떼고 천천히, 그리고 또 여유롭게 걷다 보면 행복의 계단이 나온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총 두 개로 행복의 계단을 통해 오르면 15분 만에 충분히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육안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행복의 계단을 오르는 게 제법 고되다. 

 

#. 하이라이트는 전망대

대청호 숨겨진 비경 한눈에
다도해 보는듯 수려한 풍광

 

총 645개로 구성된 행복의 계단을 호기롭게 오르면 금방 체력이 바닥나기 십상이다. 그래도 친절하게 100개 단위로 계단에 표시가 있어 체력분배를 하기엔 편하다. 600개까지 오르자 머리 위 신록의 가림막이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청남대 안에서 햇살이 가장 빨리 닿는 곳이라 땀으로 젖기 시작한 피부가 따가울 때 대청호의 거대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그 거대함을 다 뽐내진 않았지만 신록과 대비되는 그 푸름이 경이롭다. 그리고 모든 계단을 정복하면 3층짜리 전망대가 나온다. 

청남대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고개를 돌리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감정을 찾기 위해 오즈와 함께 모험을 떠난 양철나무꾼은 굳이 오즈를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에메랄드도시가 아닌 이곳을 찾았어야 했다. 

대청호 가장 북쪽에서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권력자를 동경하고 싶어진다. 그 마음이 비록 불순함에서 나오지만 그 불손함을 이겨내서라도 각막에 담긴 그 모든 것을 위해서라면 파우스트처럼 악마와도 내기라도 하리…. 어느 곳으로든 고개를 돌려도 푸른 대청호와 신록, 그리고 맑은 하늘을 떠다니는 나그네 같은 구름이 모여 방금 흘렸던 땀을 씻겨준다.
 

#. 대통령길 거닐며 여유 만끽

DJ, YS 등 6명 이름 딴 산책로
물길 숲길따라 스트레스 훌훌

 

◆한적하게 선비가 될 수 있는 대통령길

전망대에서 내려와 호반을 즐기기 위해 다시 행복의 계단을 내려온다.
청남대에 있는 대통령길을 총 여섯 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길이다. 전두환 대통령길은 본관을 시작과 출발점으로 하는 곳으로 1.5㎞다. 호반을 산책할 수 있으며 오각정을 통해 대청호를 바라볼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길 역시 호반을 산책할 수 있는 2㎞의 산책로가 있고 대통령기념관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김영삼 대통령길은 골프장을 왼쪽에, 대청호를 오른쪽에 끼고 산책할 수 있는 1㎞ 산책로로 대통령길 중 가장 짧다. 

하지만 곳곳에 그늘의 집, 행운의 샘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길은 2.5㎞로 전망대가 포함됐고 출렁다리가 있는 등 전체적으로 높은 곳에서 대청호를 볼 수 있는 조망이 훌륭한 곳이다. 

 

노무현 대통령길은 오른쪽에 골프장을 끼고 숲을 가로지르는 산책로로 김영삼 대통령길과 함께 가장 짧은 1㎞다.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이명박 대통령길은 여러 개의 콘셉트로 구성된 길로 3.1㎞다. 이곳은 병영체험장과 출렁다리, 피크닉장이 있는 게 특징이다.

역대 대통령이 즐겨 찾던 곳을 각 대통령 이름을 따 만든 것으로 대통령길 앞엔 각 대통령이 그 곳을 어떻게 즐겼는지 설명해 준다.

전망대 출발점에 선 뒤 호반을 즐기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길로 향한다. 오른쪽엔 대청호가 바로 옆에 있어 대청호의 숨결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다. 전망대에서 흘린 땀이 체온을 앗아가지만 높은 기온 탓에 춥진 않다. 

곳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벤치가 조성돼 있어 지친 다리를 풀어주기도 좋다. 모든 것이 정적이어서 자칫 심심할 때 유일하게 동적인 행운의 샘이 시원한 물레소리를 들려주며 반긴다. 물레는 비록 크지 않지만 힘차게 돌아가며 지나가는 나그네의 눈길을 붙잡는다. 잠시 동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발길을 멈추고 행운의 샘에 행운을 기원하며 동전을 던져본다.

 

아직 체력이 더 남아 본관이 있는 전두환 대통령길로 향한다. 이곳의 산책로는 좁은 편이지만 양옆엔 나무와 꽃이 가득하다. 계절의 여왕인 만큼 형형색색 화려한 몸치장에 눈이 행복하고 꽃향기에 취해 코가 즐거워진다. 

좁은 산책로를 따라 눈과 코의 감각에 취할 때쯤 오각정이 나온다. 대청호 바로 옆 바위에 위치한 오각정에서 잠시 앉아 대청호가 불어주는 산뜻함을 느껴본다. 그리고 반짝이는 대청호를 노니는 무리에서 떨어진 새 한 마리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그 순간의 평온함을 즐긴다.

뉘엿뉘엿 서쪽으로 빛이 사라져 갈 때쯤 대통령기념관이 있는 노태우 대통령길의 산책로를 방문한다. 청와대를 데칼코마니한 대통령기념관 앞을 거닐며 음악분수의 차분하고 근엄한 선율에 올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본다. 

누군가에겐 하루의 즐거운 관광, 혹은 휴식의 시간이었지만 이 나라를 이끌어가면서 존경, 혹은 혹평을 받은 역대 대통령에 대해 잠깐의 고마움을 가져본다. 그리고 그 짧은 고마움의 시간 속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멋진 풍경으로 이곳을 지키는 대청호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총평★★★★☆

20년 동안 베일 속에 감춰진 이유가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을 위해 유모차도 무료로 빌려줘 가족단위 관람객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반려견도 입장이 가능하지만 배변봉투는 꼭 챙기자. 대통령 별장이었던 만큼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리 역시 잘 돼 있다. 각 대통령길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으니 관광안내도를 살피자. 각 대통령길마다 스탬프도 있어 완주를 하는 재미도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예약을 하는 게 편하다. 가격은 성인 기준으로 청남대 입장료는 5000원, 승용차는 2000원이다. 승용차가 없다면 문의면매표소에서 청남대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자. 버스이용료는 입장료 포함 8200원이다. 다만 식사를 해결할 식당이 없고 매점만 있어 식사거리는 꼭 챙겨가자. 흡연실은 한 곳에 불과해 흡연자에겐 나름 힘들 수 있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강선영·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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