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 내포취재본부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서를 하고 선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검사는 선서를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국민을 섬기며 국가에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의사는 인술을 펼칠 것을 약속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일반 공무원들도 사명감을 갖고 직분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를 하고 체육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정정당당히 경기에 임할 것을 다짐하는 선서를 한다. 심지어 담배를 끊겠다는 금연 선서도 있고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선서도 한다. 선서는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맡게 될 직무와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맹세하는 엄숙한 행동이다. 주어진 직분과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선서는 법적인 근거에 의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구속력이 없는 선서도 많다. 온갖 역경과 난관, 유혹 속에서 처음의 마음을 끝까지 견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서라는 행위를 통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신념을 스스로 심는 것이다. 선서는 자기 구속이요, 자기 최면이다.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두 번의 대권 재수 끝에 대한민국의 통수권자가 된 문 대통령은 보수에서 진보로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물론 정권교체의 추진 동력은 광장에 쏟아져 나온 촛불민심이다. 보수 정권 9년여 동안 고단하고 팍팍해지는 삶을 목도한 국민들에게 최순실 국정 농단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국민들이 부여한 권력이 엉뚱한 사람에 의해 농단 당하는 모습에 격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한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했고 급기야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정 초유의 사태까지 치닫게 했다. 그런 탓에 문 정권의 탄생은 그 어느 정권보다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촛불 민심을 동력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했다. 취임 일성으로는 ‘국민의 대통령’을 천명했다. 경제, 안보 등 각 분야의 국정 포부를 밝히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다는 약속도 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도 했다. 대통령 선서는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절차이기는 하나 그날의 다짐을 끝까지 지킨 대통령은 거의 없었다. 그저 요식행위로 알았을 뿐 대통령 선서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그릇된 인식은 임기 중에 탄핵되거나 퇴임 뒤에 법정에 서는 질곡의 역사가 반복되는 결과를 낳았다. 모두가 초심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고 약속을 저버린 결과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볼 때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초심과는 배치되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고 철썩 같이 했던 국민과의 약속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많은 대통령들이 그로 인해 불행의 말로를 맞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새 정부는 안정된 국정운영과 더불어 불행의 역사를 단절시켜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이는 곧 국민들이 바라는 촛불민심이기도 하다. 국민을 업신여기지 않는 대통령,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질곡의 역사를 끊어주었으면 하는 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취임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가능하다. 아들과의 사소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 키우는 소중한 돼지를 잡은 증자(曾子)처럼 국민과의 약속을 꿋꿋하게 지켜나가야만 실현시킬 수 있다. 질곡의 역사를 바로잡는 것만이 ‘이게 나라냐?’라고 울분을 터뜨리는 국민들에게 ‘이게 나라다’라는 국가의 의미를 다시금 심어주는 길이요, 문 대통령 자신의 바람처럼 훗날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국민들은 취임식에서 손을 들고 선서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을 5년 내내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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