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이정보의 ‘국화야 너는 어이’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 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삼월동풍은 삼월에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말한다. 봄바람이라고 한다. 낙목한천은 나뭇잎이 떨어진 추운 계절을, 오상고절은 매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는 고상한 절개, 국화를 가리킨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춘풍 다 보내고 나뭇잎이 진 추운 계절에 네 홀로 피였느냐? 아마 도 매서운 서릿발에 높은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뿐인가 보구나. 온갖 어려움에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을 칭송한 노래이다. 국화는 지조와 절개를 표현할 때 흔히 사용되는 제재이다. 국은 매·난·국·죽, 사군자 중의 하나로 선비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가 지은 ‘증유경문(贈劉景文, 유경문에게 주다)’이란 시의 ‘국잔유유오상지(菊殘猶有傲霜枝)를 떠올리며 지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국화는 시들어도 서릿발이 심한 추위에도 가지를 남겼다는 시구다.

이정보는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바른 말을 잘하여 여러 번 파직당했다. 글은 주의(奏議)에 능했으며 사륙문(四六文)에 뛰어났다. 주(奏)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며 의(議)는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글이다. 사륙문은 육조와 당나라에서 유행했던, 네 자와 여섯 자의 구로 이뤄진 문체를 말한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어 많은 남녀 명창들을 배출해냈다.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한강변의 학여울 가에 정자를 짓고 음악에 전념했다. 김수장의 ‘해동가요’에 82수 작품이 전하고 있다. 사대부가 지었다고 보기 어려운 솔직하고 외설적인 시조가 많으며 이 중 18수 사설시조도 있다. 다른 가집들의 작품들을 포함하면 약 100여 수가 된다.

뭇노라 부나비야 네 뜻을 내 몰래라
한 나비 죽은 후에 또 한 나비 따라오녀
아무리 푸새엣 짐승인들 너 죽을 줄 모르는다

묻노라 부나비야, 네 뜻을 모르겠구나. 한 나비 죽은 후에 또 한 나비 따라오는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짐승인들 너 죽을 줄을 모르는가.

절개는 대쪽이요 지조는 국화 같았던 선비였다. 영조에게 탕평책의 부당함을 여러 번 직간했다 파직당하거나 좌천되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이었을까. 자신도 이 부나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두견아 울지 마라 이제야 내 왔노라
이화도 피어있고 새달도 돋아있다
강산에 백구 있으니 맹서풀이 하리라

그의 귀거래사다. 이제야 내 왔으니 두견아 더는 울지 말아라. 배꽃도 피어 있고 새달도 돋아있다. 강산에 백구까지 있으니 술이나 한 잔 하며 예전의 맹서 풀이나 해야겠구나. 그는 마흔에 벼슬길에 나가 수많은 풍파를 겪고 35년의 벼슬 끝에 75세의 나이로 낙향했는데, 이때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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