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 경감

금요일 저녁 편안한 마음으로 모처럼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는 형편인지라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예상보다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로 통하는 친구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내 고민도 눈치 보지 않고 풀어놓을 수 있어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전화할 사람은 딸내미 아니면 아내밖에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내였다.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일찍 끝났으면 집에 가서 애들 밥 좀 챙겨주지 전화도 없이 어디서 뭐하고 있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친구와 약속을 잡은 오늘이 하필이면 아내가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순간 뭔지 모를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친구 앞에서 구구절절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어! 어! 알았어!’를 반복하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아내가 며칠 오늘 야간근무를 한다고 했던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몇 번의 술잔이 오간 후 서둘러 친구와의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왔더니 잔뜩 부어있던 아내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약속이 있었으면 미리 얘기 좀 하지. 맞벌이 하면서 애는 나만 키우냐?는 말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살며 그동안 쌓여있던 서운한 감정을 하나둘 풀어놓았다. 뭐라 말대꾸할 겨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변명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내가 하는 말이 대부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내이자 엄마로서 아내가 하는 일은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워킹맘인 아내의 입장을 제대로 배려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애들 육아와 직장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둘 만이 대화할 시간을 많이 갖지 않다보니 서로에 대해 느꼈던 오해와 서운한 감정을 풀어버릴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문득 몇 년 전 한 코미디 프로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 개그프로그램을 보며 배꼽을 잡으며 웃고 지나갔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자화상처럼 씁쓸하게 다가왔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소통 없이 불만이 쌓이다 보면 불통이 되고 불통이 오래가면 무관심과 단절로 이어진다는 작은 진리를 느낀 하루였다. 오늘은 퇴근 후 아내의 손을 잡고 야간산책을 다녀와야겠다.

권덕원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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