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나는 오래도록 우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 어려서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민족의 통일, 나라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 통일이 절체절명의 아주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한 민족으로서, 외세의 강력한 개입과 내부의 정치논리에 따라서 갈라진 나라, 그래서 두 나라 체제로 굳어진 상태에서 통일이라는 것이 왜 절대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여야 하는가를 생각하여 보았다. 또 통일을 말하는 정부들이나 정당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지성인들의 이야기와 실제 정책이나 행동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통일의지가 나타난 6·25 전쟁의 살벌한 결과와 무의미성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그럴 때마다 통일에 대한 논의는 곧 전쟁을 하자는 것으로 직결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또 전쟁을 서로 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제관계상 쉽게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미 6·25 전쟁을 통하여, 그 피해가 얼마나 크다는 것과 그것에 따른 어떤 좋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전쟁을 실제로 수행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으로 느꼈다. 상당히 많은 정권들이 내놓은 평화정책이라는 것들은 분단고착이요 대결이요 서로 미움과 갈등만을 고조시키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평화를 더 중요하게 보는 나로서는, 우리 한반도에서 평화세상을 만드는 것은 곧 통일이라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크게 의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온 것들은 통일을 위하여 강력한 무장을 하고, 무력을 확보하여야 하며 철통같은 안보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현실정책을 보았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력한 세력들은 결코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갈라진 상태로 두면서 자신들 나라의 이득을 최대화하면 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통일을 말하는 것은 곧 전쟁을 통한 통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것과 그것을 위한 필요하지 않은 군비강화의 시소게임만이 존속한다는 것이 잡혔다. 그런 게임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는 국제무대의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슬픈 존재로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서는 전쟁을 전제로 하는 통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1989년에 이루어진 독일의 재통일을 보면서 전쟁 없이도 통일은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동독과 서독 사이에는 전쟁을 통한 통일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평화로운 방법으로 나라가 하나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당시 독일식의 평화통일 방법이 많이 논의 되고, 통일에 대하여 바라는 것이 매우 높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점점 반통일의 기운으로 매우 빠르게 방향을 바꾸어 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른바 통일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계산이 들기 때문이다. 그 부담을 내가 지고 가기 싫다는 심리다. 분단이 다른 차원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이 많은 것도 보았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기주의의 발산이었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상은 아닐 것이다. 이때 나는 다시 평화와 통일은 불가분의 것인가를 깊게 생각하여 본다. 물론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는가? 현실이 어렵다고 이상도 가지지 말란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는 통일을 앞세워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떤 당위성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을 바탕으로 두고 실제로 가능한 것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민족, 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니 통일된 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70년 이상 갈라진 나라의 살림을 해오고 있다. 또 1975년부터는 두 나라 체제로 공식화되어 UN에 각각 독립된 나라로 가입되어 활동하고 있다. 남북한의 두 정부는 각각 공식으로 서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라를 대표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다시 말하면 두 나라는 각각 다른 체제를 정체로 삼는다.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 6·25 전쟁의 연결선상에 있는 정전협정을 빠른 시간 안에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일의 진전을 위하여 법 논리에 따르거나 현실 권력체계에 따르거나 당사자들끼리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 독립된 국가로서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고 군비를 축소하며, 실제 경제와 생활과 문화공동체를 형성할 방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서로가 정통성을 주장하는 반쪽의 논리를 벗어나서, 그냥 지금 상태를 온전한 국가체제로 인정하면서, 국가와 국가 간의 협상과 협력체계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군사협정, 경제협력, 문화 활동, 학문과 인간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의 이산가족의 상봉이나 편지교류 따위를 굉장한 혜택을 주듯이 하는 어떤 행사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정부가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과 그 외 다른 나라와 맺는 온갖 협약체계를 북한과 맺는 것이다. 비자문제, 여행문제, 무역문제 따위를 국가단위로 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 간에도 한중 한일 한미관계처럼 나라들 사이의 정상관계가 이루어져서 평화체제가 형성될 것이 아닌가?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현실을 놓고 협상해야 하고, 우리와 같이 독립된 국가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나갈 때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상관계가 이루어져 평화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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