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서울중앙지법에선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될 대조적인 두 장면이 펼쳐졌다. 봉하마을에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이 열렸고, 서울중앙지법에선 탄핵·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식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5·9 장미대선을 치른 지 정확히 2주가 되는 이날,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은 공통점을 가진 두 전직 대통령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관련기사-역사의 아이러니 ‘5월 23일’…봉하에선 노무현 추도식, 서울선 박근혜 첫 재판]
[관련기사-朴, 이번에도 혐의 전부 부인]

진보 진영이 봉하마을에서 9년 만의 정권교체에 벅찬 감흥을 나누며 희열에 찬 하루를 보냈다면, 보수 진영은 재판정에 피고인으로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의 쓸쓸하고 암울한 표정을 보며 가슴 쓰라린 하루를 보냈다.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 신분으로 추도식장을 찾으며 고인에 대한 추모와 함께 마치 축제장과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데 이어 뇌물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수갑을 찬 피고인 신세로 수감(3월 31일)된 지 53일 만에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미결수 신분으로 사복 차림이었지만 왼쪽 가슴에 수인 번호를 달았고, 화장기 없는 수척해진 얼굴은 더욱 초췌해 보였다.

19대 대선을 통해 집권여당의 지위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봉하마을 추도식장에 총집결했다. 이날 행사는 2007년 17대 대선(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 참패 이후 스스로 ‘폐족’임을 선언했던 친노 세력을 포함해 민주당의 화려한 부활을 확인하는 장이자 9년 만의 정권 탈환에 성공한 문 대통령의 당선 신고식 자리가 됐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으로 되살아났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우리의 꿈을 확장해야 한다.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묻고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보자”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1호 당원’인 박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첫 대통령직 파면으로 불명예 퇴진한 데 이어 19대 대선에서 역대 최대 표차로 패배한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고, 친박계와 비박계 계파 갈등 속에 피고인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지켜보며 침통함에 휩싸였다.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이 탄핵 당해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우리 헌정의 불행이고 재현되지 않아야 할 비극이다. 재판만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맞춰 진보 진영에선 박 전 대통령 재판을 계기로 ‘적폐청산’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보수 진영은 사법부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여권의 ‘정치보복’에 반발하는 기류가 감지돼 첨예한 보(保)-혁(革)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