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청년실업과 노년층 가난이 심각한 사회문제인 현실에서 정년퇴직한 연금생활자로 해외여행을 하는 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신혼시절과 애들 뒷바라지로 갖은 고생을 함께한 아내와 모처럼 바깥나들이를 하는 게 사치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번 나들이엔 준비할 게 많았다. 한때 공산주의 블록의 종주국으로 숨막히는 공포정치의 대명사였던 ‘철의 장막’의 심장인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북유럽국가를 거쳐 다시 모스크바를 통해 귀국하는 12일의 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초봄이나 초가을 날씨라 점퍼나 스웨터 등을 다시 꺼내 짐을 꾸리니 캐리어 두 개가 그득했다. 자연경관은 노르웨이가 장관이라지만 개인적으론 세계적 교육 강국 핀란드를 간다는 설렘이 컸다. 물론 세계 최고의 북유럽 복지시스템을 살펴보는 것도 관심사였다.

해외여행의 가장 힘든 일은 역시 장시간의 비행기 탑승이다. 러시아 항공을 이용한 직항로였는데도 거의 10시간이 걸렸다. 기내식에서 디저트로 맛본 단맛이 강한 초콜릿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으로 추운 나라 음식을 실감할 수 있었다. 흔히들 모스크바 여행 하면 성 바실리 성당과 붉은 광장을 떠올리듯 우리도 자연스레 그곳을 찾았다. 버섯 모양의 8개 탑이 예쁘게 어울린 바실리 성당은 동화 속 궁전 같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일행들은 ‘붉은 광장’이 단조로운 광장임을 보며 낯설어했다. 현지 가이드가 눈치를 채고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분단국가에 살면서 학습 받은 냉전적인 이념대결의 영향으로 ‘붉은’이란 수식어에서 피비린내 나는 공산혁명의 참상을 떠올리는데, 러시아어로 ‘붉은색’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소련과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구심점이 됐단다. 화합을 뜻하는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 처형이 벌어진 것과 대조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간 배워온 공산혁명 참상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니, 선입견과 편견으로 지레짐작한 셈이다.

핀란드 교육은 입시교육에 지친 우리나라 교사와 학부모에게 크게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나도 나름 열심히 자료를 찾아 공부해 강연도 하고, 또 이를 소개하는 글들을 쓴 적이 있다. 이번은 패키지여행이라 학교 현장을 찾을 순 없지만, ‘경쟁은 기업이 추구하는 것이지 교육이 추구할 바는 아니다’라는 현지 가이드의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국가의 교육목표는 낙오자가 없도록 돕는 것이다. 소수를 위한 특별반을 만들어 평균적 학생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의 가치를 존중하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탁월한 소수를 위해 나머지가 희생하는 구별과 배제의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승자독식의 지배논리를 내면화하다 보니, 보편적 복지와 삶의 상향평준화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북유럽국가들이 과도한 복지제도로 어려움을 겪어 복지를 축소하고 있다느니, 우리나라는 강성노조 때문에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으며, 인구가 많아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어렵다는 주장에 쉽게 동조하고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 또한 사회적 편견이 아닐까. 그들의 복지제도에 약간의 조정이 있긴 하지만 대대적 복지제도 축소는 없기에 국민 행복지수가 1·2위를 다투는 것이다. 또 북유럽 복지는 우리나라의 두 배 인구를 가진 독일의 복지모델을 발전시킨 것이므로 인구가 적어 복지가 가능해진 게 아닌 셈이다. 실은 북유럽식 복지 도입에 따른 세금 부담을 꺼리는 기득권층 논리를 추종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핀란드의 여성 대통령 할로넨은 지도력을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고, 노조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활동한 미혼모로 10년 넘게 동거한 남성 보좌관과 대통령 취임 후 결혼했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시귀르다르도티르는 동성커플임을 공표하고, 동성결혼이 허용되자 정식으로 동성 파트너와 결혼했다. 미혼모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공고한 우리나라에선 꿈같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이 선택인 현실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옳다 그르다 재단하는 데 있다. 다양한 개인의 선택을 다름으로 존중하는 사회, 평균적 삶의 향상에서 행복을 찾는 복지사회에 대한 추구는, 북유럽에 대한 선망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편견을 넘어서려 노력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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