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허정의 ‘이엉이 다 걷어지치니…’ 외

이엉이 다 걷어치니 울잣인들 성할소냐
불 아닌 다힌 방에 긴밤 어이 새오려니
아해는 세사를 모르고 이야지야 한다

가난한 선비의 살림살이가 눈에 보이는 듯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울잣’은 울타리를 말하며 울(籬)과 잣(城)의 복합어다. 잣은 성의 고어다. ‘이야지야’는 이렇거니 저렇거니 불평하는 소리다. 이엉을 다 걷어치우니 울타리인들 성할 것인가. 불 아니 땐 방에 긴 밤을 어찌 새우려고 하느냐. 아이는 세상을 모르고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하고 있구나.

지붕도 울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땔나무도 없으니 이런 냉골에서 밤은 어떻게 지새우겠는가. 아이들은 이런 세상의 물정을 알 리가 없다. 그저 춥고 배고플 뿐, 이런 저런 불평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허정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이다. 1651년(효종 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천부사를 거쳐 승지와 부윤을 지냈다. 허정은 홍수의 변이 있었을 때 사건의 전말을 청풍부원군 김우명에게 알려준 의기의 인물이다. 김우명으로 하여금 차자(箚子, 간단한 상소문)를 올려 복창군과 복평군의 죄를 논핵하게 했다. 홍수의 변은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창군 정과 복평군 연이 내전에 무상 출입하면서 궁녀들과 통간한 사실이 드러나 귀양간 사건을 말한다.

시조 3수가 ‘해동가요’, ‘청구영언’ 등에 전한다.

일중(日中) 삼족오(三足鸟)야 가지 말고 내말 들어
너희는 반포조(反哺鸟)라 조중지증자(鸟中之曾子)니
우리의 학발쌍친(鹤髮双亲)을 더듸 늙게 (하여라).

일중 삼족오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태양 안에서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다.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길조로 태양신을 상징한다. 삼족오의 이름은 태양 안에 있는 흑점이 까마귀처럼 보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한 까마귀는 ‘반포조(反哺鳥)’라 하여 효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포는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다 늙으면 새끼들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줘 은혜를 보답한다는 뜻으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이르는 말이다.

증자는 공자의 제자로 14세 때 태산 기슭에서 농사를 하다가 눈과 비가 내려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부모를 생각하고 양산(梁山)의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효심이 지극해 멀리 있어도 모친이 전하는 바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 효자의 대명사다. 학발쌍친은 머리가 하얗게 센 부모, 바로 늙으신 부모님을 이르는 말이다.

태양에 사는 삼족오야. 가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반포조라 새 중의 효자이니라. 우리의 늙으신 부모를 더디 늙게 하려무나. 까마귀가 효의 새이니 가지 말고 늙으신 우리 부모님을 더디 늙게 해달라는 지극한 효심을 나타낸 시조다.

고시조 한 편에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효의 근본이 무너져간 이 시대에 되씹어봄직한 시조다. 증자만도 못한 인간이라면 모르되 까마귀만도 못한 인간이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까마귀와 증자는 효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생각해봄직한 효의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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