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산의 꼭대기에 올라왔다면 그것은 절반의 등산을 한 것이다. 무사히 산을 내려와야 비로소 완전한 등산을 한 것이다. 정상의 위치에 올라왔다면 그것은 절반의 정상이 된 것이다. 박수 받으며 내려와야 비로소 완전한 정상이 되는 것이다. 공(功)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절반의 공(功)인 것이다. 보답의 미련을 버려야 비로소 완전한 공(功)을 이룬 것이다.

▲ ‘공(功)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라.’ 이것은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이고 교훈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 전국시대 월나라 왕인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자(?者)의 자리에 오르게 한 그 일등공신은 ‘오자서’와 ‘범려’였다. 오자서는 왕의 곁에서 권력을 누리다가 죽음을 당했고 ‘범려’는 일찌감치 왕의 곁을 물러났기에 죽음을 면했다. ‘한신’과‘장량’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이었다. 그 후 ‘한신’은 한고조가 된 ‘유방’곁에서 야욕을 부리다가 유방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였고 ‘장량’은 일찌감치 물러났기에 죽음을 면했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이성계 곁에서 야망을 펼치려다가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했고 또 한 사람의 개국공신이었던 ‘퉁두란’은 이성계가 죽자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났기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 속 개국공신들이 공(功)을 세우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됨에 대한 노자의 교훈을 새겨보겠다. 노자는 ‘공(功)을 세우게 되면 그에 대한 대가로 부귀를 얻게 되고 부귀를 얻게 되면 교만하게 되고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되니 결국 그 허물로 인해 화를 초래하게 된다.’ 하였다. 오자서, 한신 그리고 정도전 등 모두는 개국의 공(功)을 세운 대가로 권력을 탐하다가 결국은 스스로의 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공(功)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道)’라 했다. 그래서 공성신퇴(功成身退) 즉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라하는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들이 미련 없이 보답과 영광의 자리를 마다하고 떠난 것이 바로 공성신퇴(功成身退)의 도를 실천함이 아니겠는가.

▲ 공을 세운자의 필수덕목은 ‘겸손’이다.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 비명횡사한 영웅호걸이나 경세가들은 모두가 큰 공과 업적을 세우는 데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 안타깝게도 겸손의 재능은 발휘하지 못했음이다. 그러므로 공을 세운 자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은 ‘겸손’이라 하겠다.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大夫)인 맹지반(孟之反)의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노나라는 제나라와 싸움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밀리면서 노나라군사들이 성안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이때 ‘맹지반’이 맨 뒤에서 추격하는 적을 막으면서 아군들이 무사히 퇴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은 제일 마지막으로 퇴각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맹지반을 불러 그 공을 높이 치하하였다. 이에 맹지반은 ‘제가 감히 뒤에 남아 병사들을 엄호한 것이 아니라 제가 탄 말이 싸움에 지쳐 잘 달리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뒤로 쳐진 것입니다.’ 하면서 자신의 공을 나타내지 않았다. 옛날에는 전투를 시작할 때는 선두에 서는 것을 공으로 삼지만 전투에서 패하여 후퇴할 때는 대열의 후미에 서는 것을 공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제일 후미에서 살신성인정신으로 군사들을 퇴각시킨 맹지반의 공을 치하한 것이다. 그러나 맹지반은 타고 있는 말의 핑계를 대며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았음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께서도 명나라 장수가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전공을 탐내자 선뜻 자신의 전공을 명나라 장수에게 돌려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오만불손했던 명나라 장수는 이순신 장군의 덕에 감복하여 굴복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功(공)은 드러내지 않고 감추거나 남에게 돌리는 겸손에서 그 공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을 세운 자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은 겸손인 것이다.

▲ 그렇다. 겸수익(謙受益) 만초손(慢招損)이다. 겸손은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교만은 손해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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