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암 행정학 박사

 

한국의 노동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 부두와 광산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노동운동은 처음 민족독립운동의 성격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해방 후 사회민주화를 실현한다는 구실 아래 정권의 시녀노릇을 하기도 했다. 당시 자유당 정권과 미군정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우익 어용노동조합은 진보적 좌익 사회주의 정치사상을 가진 노동단체를 강제했다. 하지만 탄압은 오히려 투쟁을 부추겨 더 강한 진보와 더 강한 사회주의 정치사상을 가진 노동조합을 양산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거대한 생명력을 공급받았다. 비민주적이고 비자주적인 유산을 민주적·자주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전투적·변혁적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7년 IMF 경제위기는 민주적·자주적 노동운동의 역동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기존의 전투적·변혁적 노선을 걸으며 정권 및 자본과의 투쟁을 통해 민주적·자주적 노동운동의 토양을 정착시킬 수 있는 수준 높고 선진화된 노동운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무기력해진 노동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수용해 온건·합리적인 노동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국가 부도위기를 표방하며 자본은 노동자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력구조조정(정리해고), 비정규직 차별화, 노동조합 간부들의 각종 비리 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며 노동조합은 총체적 위기상황을 맞았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자본은 노동관계법의 주도권을 잡고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를 허용케 함으로써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제화했다. 여기에 정권은 기업별 교섭과 기업별 노조를 강요했다. 이러한 노동환경의 변화 속에서는 노동조합의 핵심사항인 단협이 해지될 위기에 놓여 노동운동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처럼 노동조합은 있지만 노동운동은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각개전투가 돼선 안 된다. 총 지휘부를 중심으로 산하조직이 똘똘 뭉쳐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각성과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노총 지도부는 자신들의 의지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조합원인 공중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여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지도부는 더 이상 상층부에만 둥지에 틀고 관성에 의한 관료제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동안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던 지도부가 관성에 따라 관료화됐다면 사회개량주의를 추구했던 한국의 노동조합법과 상호보완적 관계가 돼 대중의 수동화를 조장하게 된다. 한국 노동조합법의 근간인 사회개량주의의 본질은 인정하되 노동운동을 통해 조합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도 필요하고 혁신도 필요하다.

정부도 자본만을 끌어안고 가려는 듯한 모습을 버려야 한다. 정부가 이런 모습을 보일수록 노동자 대중의 연대를 무서워하여 교묘하고 강제적인 방법으로 탄압한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국가 발전의 큰 틀에서 보면 자신들의 의지만을 일방적으로 발현시키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기관이다. 노동조합의 노동운동을 무기력하게 만들면 결국 나라 전체 경제는 물론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길들여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한 구조적 역학관계를 만들면 안 된다. 노동운동의 단결권과 자립성을 인정해 선진화된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점을 극복한다 하여,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같은 한 가지 이념의 잣대만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해서도 안 된다. 집 안에서 창을 보면 창 너머가 밖이고, 창의 너머에서 집안을 보면 집안이 밖이다. 피차의 구별은 고정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자본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데 정부가 앞장서 뚜벅뚜벅 걸음으로써 노동과 자본 모두가 상행할 수 있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