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취재부국장

 

그를 처음 본 것은 기자 초년병 시절인 20여 년 전이다. 기억건대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채 ‘헬프미’하며 불쑥 들어왔다. 틈입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왜소한 체구 그러나 굳은 표정은 어기차 보이기까지 했다. “양말 하나 사!” 잘 쳐주면 강권이고 아니면 명령조였다. 역설적이라고 할까. 분명 ‘헬프미’의 자세는 아니었다. ‘저 사람이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지’ 따져볼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양말 한 묶음을 산 것이 그와의 첫 대면, 첫 교류였다. 그가 누구인지는 나만 몰랐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같은 상황에 마주했지만 용케 넘어갔다. 그다음엔 손수건을 샀다. 그다지 요긴한 물건은 아니어서 그 후론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갔지만 다행히 면전에서 나무라지는 않으셨다. 대신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 높은 놈들도 양말 하나 팔아주지 않고. 있는 놈들이 더 하다니까.”라는 식의 푸념을 공유해야 했다.

그의 이름은 신초지, 우리는 그를 ‘헬프미 아줌마’라고 부른다. 분신과도 같은 수레와 봇짐은 그대로인데 공연히 주인장의 몸집만 작아져 보일 뿐 그렇게 20년 남짓 같은 모습의 그를 봐 왔다. 그의 직업은 봇짐장수다. 어디서 그런 근력이 나는지 상당한 무게의 봇짐을 메고 사시사철 관공서며 학교 등에 이런저런 물건을 팔러 다닌다. 세상은 그를 그저 잡상인 취급한다. 문전박대는 기본, 옥신각신하다 감정 상하는 일이 다반사다. 관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결코 반가울 리 없는 손님일 테니 이를 일방적으로 나무랄 순 없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적어도 드러내놓고 괄시를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게 설움의 장벽이겠지만.

그를 잡상인으로 본다면 맞다. 그러나 애면글면 행상이 삿(私)되지 않다는 게 그를 잡상인으로만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다. 핀잔받으며 그토록 어렵사리 쥔 돈을 죄다 남에게 쓰니 말이다. 누구보다 자신을 건사해야 하는 형편임에도 때로는 성금으로, 때로는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는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족하단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입성도, 먹성도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야박하다. 남 신경 쓸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 건강 간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참견하면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 몇 년 전 암 수술을 했고 최근엔 다른 병을 얻어 병원 신세를 졌다.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병원비 무섭다며 통원 치료만 받고 있다. 지병이 아니라도 평생 봇짐을 진 팔순을 바라보는 그다. 아마 만류해도 금세 그 몸 이끌고 수레를 끌 것이다.

‘헬프미 아줌마’의 판매 방식이 독특한 것은 사실이다. 막무가내라고 할 수 있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의무감 같은 것이 곁들여져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시간대에 그만 들이는 것은 형평성에서 어긋날 수 있다. 다만 그를 통해 미력하나마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더해 ‘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냐’고 반문하면 그리 맞갖잖게만 보이지는 않을 일이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어떠랴. 그저 애쓰신다는 격려의 표정만으로도 족하다. 그만을 위한 배려나 관심은 필요치 않다. ‘잡상인 출입금지’로 노구를 멍들게만 하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냐.

그는 요즘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인심 참 야박해. 특히 힘 있는 사람들은 더 하지. 약속을 하고도 다른 사람 시켜 문전박대한다니까.”

어쩌면 이 순간이 ‘헬프미’에 응답할 시간일지 모른다. 그의 선행은 차치하더라도 복지가 품어야 할 그는 홀몸 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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