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지난 6일은 청주대 개교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다. 한수 이남 최고의 민족사학 청주대 공동 설립자인 석정(錫定) 김영근(金永根, 1888~1976) 선생은 1888년 음력 1월 7일 경북 경주군 안강면 내동리의 김해 김씨 문중에서 경주 사창(社倉)을 맡았던 부친 김한중과 모친 강릉 진씨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무학(無學)인데도 불구하고 상재(商才)가 남달리 뛰어나 상업으로 성공해 거부가 됨으로써 형인 청암 김원근 선생과 함께 1960년대까지 한국 경제계를 주름잡았다.

또 온갖 고초를 겪으며 피땀 흘려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일평생 허름한 단칸집에서 검소하게 살면서 불우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고, 자신의 선행을 결코 내세우지 않으며 주로 원산에서 자선사업을 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924년 교육구국을 위해 형 김원근과 청석학원을 설립해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무려 7개의 학교를 세우고 10만여 명의 인재를 양성해 지역과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석정은 청석학원 공동설립자이면서도 형에게 학원 경영을 일임하고 뒤에서 장사와 농업을 하면서 도와줬다. 모든 공은 형에게 돌리고, 명예를 탐하지 않았다. 형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떨어질까 봐 청석학원 창립 50주년 행사와 청주상업학교 낙성식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상점에서 평상시와 같이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석유 됫박 장사를 했다. 그리고 형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장사로 피땀 흘려 모은 돈 25만 원을 형의 이름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석정은 1970년 82세 때 제9회 5·16민족상 교육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명예와 공을 탐함이 없이 오로지 인재 육성에 바친 거룩한 육영의 자세는 후대에 길이 전해야 할 민족의 자랑”이라고 칭송했다.

석정의 생애 전반을 고찰해 보면 그가 교육입국(교육구국)·사회봉사·평등·실용주의·근검절약(청빈)·생명존중·항일독립 등의 사상을 갖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사립학교 설립자들이 일제의 민족사학 탄압을 견디지 못해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이나 조선임전보국단에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전선으로 내모는 데 앞장서고, 일본군 비행기 대금으로 거액을 헌납하는 등 친일매국행위를 해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수록돼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석정은 일제강점기에 한글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만 통용됐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한글만 사용하고, 일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일체 고용하지 않았다. 이화여전이 재정난에 봉착해 일본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원산의 기생 갑부인 주태경 여사를 김활란 학장에게 소개해줘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석정의 민족사학 설립과 이타적 사회봉사 활동,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건 한글 전용은 자기 수련을 통한 커다란 깨우침이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숭고한 업적이다. 한마디로 그는 ‘수기상인(修己商人, Noble merchant) 독지가’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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