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학교 교목

요즘 아파트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1인 가구 증가나 소득 수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다만 공동주택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위생이나 소음 같은 문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라 차치하고 지나친 애정표현도 보기에 민망할 때가 많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은 아니다.

얼마 전 어떤 젊은 여성이 애완견과 침대에서 함께 잔다고 자랑하는 것을 봤다. 좋아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반려동물의 정체성을 혼란케 하는 행위다. 개를 좋아해 집안에서 키운다 할지라도 개와 사람의 공간이 같을 수는 없다. 개와 사람의 공간은 분리돼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자리는 존재의 품위를 나타내고 존재가 이루는 삶의 품격을 드러낸다. 돼지가 아파트에서 살수 없고 사람이 돼지우리에서 살 수는 없다. 버섯이 아무리 고와도 화분에서 기르진 않는다. 아무리 화려하고 예뻐도 버섯은 버섯일 뿐 꽃이 아니다. 꽃은 화분에서 키울 수 있지만 버섯은 화분에 키울 수 없다. 만일 화분에 버섯을 키운다면 그 또한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과잉된 모습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장면은 혼돈에서 질서로 바뀌는 현장이다.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창조인 것이다. 역할에 따라 그 존재의 의미가 부여될 때 사계절이 생겨나고 밤낮이 생긴다. 해와 달과 별은 물론 나무와 꽃이 있어야 할 자리, 각종 동물과 물고기, 새들이 있어야 할 곳에 각기 존재함으로서 조화와 균형을 갖고 그 곳에 생명력이 생겨난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음으로 인해 존재 의미를 망각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부적절하다. 여름날 두꺼운 겨울 옷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먼동이 트면 들고 있던 횃불은 필요하지 않다. 밤새도록 횃불을 들고 어둠을 밝혔다 하더라도 동이 트면 횃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도 횃불을 들고 서 있다면 그것은 횃불의 본질적 가치를 잃은 행위다.

큰 기대 가운데 대통령이 선출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새 정부의 출범은 요원해 보인다. 정부 내각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신상 털기에 나선 야당과 제기된 의혹에 문제가 없다는 여당이 연일 정치적 공방만 벌이고 있다. 상대의 실패가 정권 잡을 기회가 되는 정치 풍토에서 능력과 정책을 검증하기보다는 흠집 내기가 현실적 대안일 수밖에 없다. 공수를 바꿔 반복되는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며 국민이 환멸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의혹이 제기된 문제와 비리혐의가 사실이라면 무능하거나 부도덕하고 아니면 둘 다인 후보들뿐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시스템이라면 가학적 공개와 수치심만 남게 될 것이다. 도덕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 나 할 것 없이 옳은 것보다 유리한 것을 선택하며 살았던 기회주의적 삶의 결과를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모두는 대체로 부패하고 반칙을 거듭했으며 이익에는 약삭빠르게 살아왔다. 관용이 의미가 없고 참회가 형식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있어야 할 곳을 이탈하며 살았던 것도 사실이고 균형과 조화대신 경쟁과 갈등을 택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적재적소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다. 질서와 창조는 여기에서 나온다. 아무리 상대의 실패가 기회가 된다 해도 그러기엔 국가현안 문제가 가볍지 않다. 예측하기 어려운 외교 문제와 국가 안보, 600조 원을 넘어서는 국가부채와 청년 실업, 극심해지는 양극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것은 대통령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정당 간에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할 때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과 참회, 상대를 향한 이해와 용서가 있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관계가 가능해진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자기 발밑을 살펴보라는 말이다. 자기 존재의 본질적 상황을 스스로 살펴보고 받아들이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기 검열이다. 누군가 나를 검증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검열하지 않으면 누군가 안 된다고 말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구차하게 변명하거나 죄송하다며 읍소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