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의 몇몇 판결에 대해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원이 동거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남성에게 징역 3년을 준 반면, 고3 딸을 성추행한 상담교사를 살해한 어머니에게는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은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을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후 콘크리트로 덮기까지 한 남성 A 씨는 1심에서 징역 5년, 항소심에서 감형돼 징역 3년을 받았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등학생 딸의 말에 분노해 해당 교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여성 B 씨는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물론 각 사건의 사안은 제각각으로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정상 참작의 여지가 큰 B 씨에 비해 A 씨의 형량이 가벼운 것 아닌가하는 지적과 함께 일반인의 정서와는 판이한 양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다.

법조기자로 이 같은 판결 소식을 접하며 ‘법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됐다. A 씨 재판처럼 ‘평소 피해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유족과 합의되면 감형이 이뤄지는, B 씨 재판처럼 ‘사적복수’라는 틀 속에 정상참작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기계적인 무엇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대전지법에서 내린 한 판결과 대전고법 한 재판부의 태도는 법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했다. 대전지법 한 재판부는 최근 자폐성 장애가 있는 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지적장애인 C 씨에게 징역 5년과 치료감호 처분을 선고했다. 사건은 잔혹했고 가해자의 범행은 이들을 가장 사랑했을 유족인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을 상처를 남긴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고민지점은 있었다. ‘장애를 가진 자신과 동생이 죽으면 어머니가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랬다’는 지적장애인 C 씨의 진술이었다. 당연스레 재판부의 판결에 귀추가 주목됐다.

재판부의 양형과 그 이유에는 이 사건에 대한 적잖은 고뇌가 엿보였다. 재판부는 “죄책이 무거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 비록 잘못된 생각이기는 하나 피고인 자신과 피해자가 장애를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모친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비관한 나머지 자신과 피해자가 죽으면 모친이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이후 본인도 자해를 시도하는 등 전후의 정황과 범행 동기에 비춰 참작할 바가 있다. 피해자 유족이자 피고인의 어머니가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양형이 적정한지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 짧은 양형 이유에는 많은 이가 공감할 법한 정상참작의 이유와 인간애가 담겨있는 듯했다.

또 일본의 한 사찰에서 도난당해 국내로 들어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을 가리는 항소심에서 대전고법 재판부가 보여준 자세도 흥미로웠다. 국가와 부석사 간의 법정다툼에서 재판부가 피고인 국가에게 ‘결연문의 진위 입증을 도울 수 있느냐’는 취지의 권유를 한 대목이다.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국가가 도우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권유는, 법이 ‘딱딱한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작은 예처럼 생각됐다. 이 같은 지역사회의 흥미로운 재판들이, 법조인들에게 최근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일부 판결을 되돌아 보며 ‘법의 의미’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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