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지금 우리 정치계에 정당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정당사를 쓸 수 있는 상황인가를 묻는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정당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이런 이름으로 나왔다가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정치라는 언저리, 정당이라는 언저리에서 노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얼굴에 그 얼굴. 어떤 사람은 정당 바꾸기를 마치 시내버스 환승하듯이 자주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토했던 것 다시 주어먹는 식으로 비판하고 나왔던 정당이라는 곳으로 기어들어가기도 한다. 별로 명분도 없고, 철학도 없고, 어떤 시대의 요청이나 낯짝도 없다. 그들의 속 깊은 뜻을 알기는 어렵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냥 자기의 이익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파렴치한 행동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서로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면서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상당히 많은 경우 이러한 사람들이 합종연횡하고 이합집산하는 것이 정당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치라고 하는 정(政)은 옳음 바름을 뜻하는 정(正)이라고 우리 스승들은 가르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 옳고 바른 것[正]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위대한 철학자나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그것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최고 권력을 위임받아 집행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그것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개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언론들은 국민여론을 앞세우거나 시민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그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그 국민의 맘이라는 것을 진리처럼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그때의 시민 개개인들의 이해득실, 가치판단 등이 모여서 여론의 흐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은 그래서 이것이라고 또렷이 밝혀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주장할 수도 없다.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는 언제나 절대가치를 추구하는 듯이 보이면서 상대 활동을 따라간다. 엄밀히 따지면 절대가치는 잡을 수가 없다. 더욱 철저히 말하면 절대가치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모든 가치들이 때로는 절대가치처럼 나타나고, 상황에 따라 그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아주 쉽게 말해서, 높고 낮음, 길고 짧음, 크고 작음, 많고 적음, 밝고 어둠, 앞 뒤, 빠르고 느림, 풍요롭고 빈곤스럼 따위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그 어느 것 한 가지만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그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을 만큼, 그것 자체는 없다. 그것은 언제나 상대개념들이다. 다른 한 쪽이 없으면 이쪽도 없단 말이다. 이쪽저쪽이라는 것 역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더욱이 여론에 따라 달라지는 정권이란 것, 정치흐름이라는 것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쉽지가 않다. 정권이 여기에 주어졌다가 다음에는 저기에 주어질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야의 판단이란 더욱 쉽지가 않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자신들이 내뱉은 말들과 행동들이 아주 헷갈리게 달라지는 데도 아주 태연한 듯하는 정치권에서는 판단 자체를 접어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더욱 꼴보아 주기 어려운 것은 소위 정당이라는 것에 소속된 뒤의 정치가들의 행동이다.

사실 정치라는 것은 어려서부터 함께 살아가는 공동 삶의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그러한 삶을 실제 생활에서 익혀간다. 그런데 그놈의 입시교육이라는 것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살림을 모르고 살게 된다. 오로지 공부, 인지공부만이 옳은 것으로 몰고 가는 이 사회행태가 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특별히 정치활동으로 삶을 꾸리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교육은 전혀 없다. 정당 활동이나 이념 활동을 어려서부터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품위 있는 정치교육이 없고, 정당 활동이라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없이 정치계에 뛰어든다. 어느 정도는 자기 맘에 맞고, 자기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지만, 뚜렷한 정치이념에 따라서 만나지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진보요 보수요, 좌파요 우파라는 딱지를 서로 붙이고 설치는 것은 참 보기에도 민망하고 우습다. 이러한 판국에 만들어지는 정당이라는 것과 그것을 중심으로 엮여지는 정치가 매우 안타깝고 한심하다.

지금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는 각부처장의 지명과 청문회와 임명을 두고 펼쳐지는 여·야 간의 대결은 참으로 못마땅하다. 그것을 통하여 자기존재감을 나타내려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운명처럼 따라붙는 행위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가에 따라서 무조건 반대하거나 무조건 찬성하는 기계들이나 꼭두각시놀음을 보는 듯한 인상은 참으로 보아 넘기기 어렵다. 정당정치라는 것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뚜렷한 정치이념과 일치한 사람들의 집단이 펼치는 정책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자기이익을 지키려는 패거리의 집단행동뿐이다. 이번 새로 시작되는 정치흐름에 따라서 정당 제도를 새로운 틀로 바꾸면 좋겠다. 정당정치가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을 하나의 기관으로 격상하고, 사안 상황 정책에 따라 개별로 참석하게 하는 일이다. 정부가 내세우거나 시민들이 바라는 것을 사안별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그것에 모이는 정치가들의 행동으로 정책이 결정되면 좋겠다.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정당추천이나 공천을 없애고, 그냥 괜찮은 개인이 출마하고 시민의 판단을 받은 사람들의 집합들이 모여서 모든 사안마다 새롭게 상의하여 나가는 정치, 그러면 아주 활발한 토론과 이치에 맞는 괜찮은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정당정치는 하나의 패거리정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것을 여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괜찮은 개개인들의 결정으로 바꿔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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