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직동 (2구간)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백제 숨결 깃든 노고산에 오르다

신록에 안긴 그윽한 요새

백제 흥망의 역사 간직한 노고산 ...
정상 오르면 저 멀리 묵직한 힐링
6월이 가기 전 꼭 걸어보아야 할 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멸망했으나 백제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현재까지도 집중을 받는다.

백제가 자랑했던 뛰어난 문화들은 여전히 우리 삶에 남아 있어서다. 건축기술론 공주 공산성이, 세공기술론 백제금동대향로가 대표적이다.

결국 백제는 백제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백제의 후예라면 충분히 자랑스럽지만 신라의 칼끝으로 결국 망국이 됐다는 절망스러움도 공존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대청호를 바라보면 기쁨과 환희를 느끼지만 이곳을 사수하려던 백제를 생각하면 슬픔과 절망에 마주친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감정을 들고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에 들어선다.
 

#.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삼국시대는 그야말로 피의 역사다.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처절한 싸움이 700년 동안 지속됐다.

강산이 70번이나 바뀌는 기간 꺼져버린 소중한 생명의 불씨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에 위치한 찬샘마을의 과거 이름인 '피골'이란 지명이 피의 역사를 대변한다.

피골이란 피로 된 골짜기란 뜻으로 과거 이곳에서 무수한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의 그곳은 대청호가 크게 자리 잡았고 정자까지 들어서 피비린내의 역사와는 다른 풍경을 자랑한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피비린내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노고산을 향해 백제를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묵념을 하고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노고산은 해발 250m의 낮은 산으로 피골의 뒷산이라 불린다. 산에 오르니 제법 바삭거리는 햇살이 구름을 거치지 않고 직선으로 날아오니 처절했던 과거의 전투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피부가 따끔거린다.

하지만 이내 우거진 나무들이 고통을 덜어준다. 우거진 푸름 그 너머로 이따금씩 대청호가 모습을 보이며 햇살을 힘껏 머금은 찬란한 모습을 보이나 이번만큼은 대청호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고자 애써 시선을 바닥으로 거둔다.

지칠 만할 때쯤 이따금씩 들꽃이라 하기엔 아름답고 이름을 붙여주자니 평범한 꽃이 나와 기운을 북돋워준다. 백제를 위해 한 몸 희생한 수많은 백제인도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을 꽃과 같았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자 발걸음은 유독 무겁다. 노고산은 높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쯤 ‘이곳에 산성이 있을까?' 의문이 드는 가파른 경사가 나온다. 가파른 경사를 앞두고 잠깐 휴식을 통해 고조에 오른 들숨과 날숨의 향연을 정리한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황산벌을 향한 계백(階伯)처럼, 백제부흥군을 뒤로하고 백제의 왕손인 부여융(扶餘隆)을 따라 항복하기 위해 당나라로 발길을 돌린 흑치상지(黑齒常之)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한 시간 가까이 옮기면 노고산 정상이 나온다.

이 순간만큼은 억제했던 감정이 폭발한다. 넓은 대청호가 반짝이는 그 아름다움이란 감정만이 차오른다.

백제군이 목숨 걸고 싸워야 했던 건 이렇게나 멋진 모습을 간직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비록 그들은 이곳에서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결국 이 아름다움을 후손에 물려줬다는 것 그 하나로도 충분히 찬사를 받아야 한다.

억제를 뚫고 나온 감정을 추스르고자 충분히 각막에 아름다움을 새겨본다.
 

노고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노고산성이 나온다. 백제가 남긴 많은 산성 중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계족산성으로 금강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있고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많이 출토됐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계족산성을 중심으로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했을 정도로 요충지였는데 이 요충지의 전초기지를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바로 노고산성이다.

지금은 비록 산성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했지만 남은 산성을 보면 제법 컸을 거라 생각된다.
 

 

 

#. 자연, 아이 그리고 동물까지… 존재하는 모든 게 힐링이 되는 찬샘마을

농심 배우며 동심 키우는 농촌체험
천진난만 고사리손엔 행복이 한아름
소박한 마을이 안겨주는 커다란 감동

 

치열했던 전투의 역사를 뒤로하고 노고산을 내려오면 찬샘마을이 나온다. 찬샘마을의 유래는 피골에서 출발한다.

워낙 섬뜩한 이름인지라 마을 이름을 바꾸고자 고민한 결과 근처에 차가운 샘이 있어서 냉천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순우리말로 바꿔 찬샘이 됐다. 찬샘마을의 도로명주소는 냉천로일 정도로 샘이 보통 차가운 게 아니다.
 

찬샘마을은 전형적인 대청호 주변 마을로 소박함 그 자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농촌체험마을로 유명할 정도의 논이다.

석 달 뒤 황금빛 들녘으로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푸르기 때문에 왜가리 한 마리가 논에라도 앉으면 금방 눈에 띈다.

대도시의 빼곡한 회색의 빌딩숲이 아닌 자연 그대로인 녹색의 논 때문에 농촌체험을 하러 대전에서 아이들이 자주 이 곳을 찾는다.

차가운 콘크리트로 지어진 병원에서 태어나 사방이 벽으로 막힌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놀고 바보상자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이곳을 찾으면 신기하듯 탄성을 지르기 바쁘다.

간식으로 자주 먹던 감자와 고구마를 직접 캐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귀여운 모습도 이곳에선 일상이다.

 

푸른 자연을 통해서만 지친 일상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천진난만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만지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이들은 하멜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오와 열을 맞춰 걷는 모습마저 이곳에선 하나의 치료제가 된다.

먹지 않고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부모의 심정처럼 찬샘마을의 어르신들은 그저 흐뭇하게 손주를 바라보듯 아이들은 바라본다.

푸른 논 옆엔 토끼농장이 있어 아이들은 우르르 토끼농장으로 뛰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손길에 자그마한 토끼가 다치지 않을까 길 건너는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처럼 노심초사하는 아이부터 조금이라도 더 보드라운 토끼털을 만지고자 용쓰는 아이까지 제각각의 관심의 방식을 담아 손을 뻗는다.

아이가 토끼를 귀여워하는 모습이 아이가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제법 대견스럽기까지 하지만 이내 궁금한 게 많아 찬샘마을 어르신에게 이것저것을 묻는 걸 보면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신록에 몸을 맡긴 채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제법 뛰어 다니며 열심히 기운을 뽐낸 뒤 삼삼오오 그늘을 찾아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손으로 닦기 바쁘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고 흙을 가지고 노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함 이 일상이 주는 기쁨에 취해 뜨거운 햇살과 망국 백제에 대한 슬픔도 잊은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총평★★★★

노고산 자체는 높지 않아 오르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정상에서는 대청호가 보여 좋은 조망을 자랑한다. 정상엔 비교적 넓은 터가 있고 나무도 우거져 돗자리를 가져가는 걸 추천한다. 정상에서 노고산성은 멀지 않아 노고산성은 꼭 들러보자. 노고산성에서 내려오면 찬샘마을이 있는데 농촌체험마을로 유명하다. 가족단위라면 체험은 필수로 해보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토끼농장 등도 있다. 그럼에도 별 네 개에 그친 이유는 정상까지 두세 개 정도의 높은 언덕이 있고 그늘은 많지만 등산 중 쉴만한 곳이 정말 없어서다. 참고로 이번 취재에 따라온 사람은 이곳을 오르고 몸살이 났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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