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1980년 6월경으로 기억된다. 10.26사태 이후 사실상 국가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사회정의 실현과 부패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삼청교육대와 언론통폐합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걸친 초법적인 정책을 쏟아냈다. 최규하 대통령이 권좌를 지키고는 있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바탕으로 행해진 무자비한 정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본고사 폐지와 대입졸업정원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교육 정책이 전격 시행됐다. 본고사를 없애는 대신 지금의 수능시험과 같은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대학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동일계 진학 우대 정책도 내놓았다. 동일 계열로 진학할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계열 간 교차지원을 봉쇄시킨 제도이다. 교육계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신군부의 서슬퍼런 칼날에 묻혀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소수의 의견을 들어 독단적으로 신군부가 내놓은 교육정책은 교육현장과 입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시험을 목전에 둔 교육현장과 수험생들은 새로운 정책에 맞춰 입시를 준비하느라 허둥댔고 많은 학생들은 목표했던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교육 당사자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일방적으로 행해진 정책이 많은 학생들 가슴속에 깊은 생채기만 남겼다. 37년이 지난 흘러간 이야기를 이제 와서 들춰낸 것은 시대가 변했고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수요자들의 의견수렴이나 국민 동의 과정 없이 추진되는 개혁은 혼란과 저항을 피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문제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아직 정부를 이끌어 가기 위한 조각조차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드라이브는 숨 가쁘다. 촛불정신에 입각해 지난 정권들이 만들어 놓은 적폐를 청산하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은 가히 속도전이라 할 만하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뀐 교육정책은 암기식 교육이나 사교육 공화국을 만드는 등 수많은 적폐를 쌓아 놓았기에 이를 청산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번째로 국정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고 전국 중·고교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도 없앴다. 앞으로 특목·자사고를 폐지할 계획이며 고교 학점제 시행, 유보통합, 수능개편 등 교육 정상화를 기치로 한 혁신적인 정책들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교육개혁은 성적이나 학교 서열화를 없애고 교육양극화를 개선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취지를 바탕으로 한다.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하지만 정권 초기에 추진되는 갑작스러운 변혁에 교육 현장과 수요자인 학생들은 당황해 하고 있다. 교육개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교육계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교육 당사자들의 고통과 혼란을 도외시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할 경우 선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반목과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어려움을 감안하지 않고 위정자의 입맛에 맞춰 일방적으로 정책이 추진된다면 또 다른 적폐로 변질될 수 있다. 속도전에 매몰돼 혼돈의 교육현장을 만든다면 성공적 개혁은 장담할 수 없음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개혁에는 엇갈린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올바른 정책이라도 수혜자가 있으면 어딘가에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교육 분야는 특히 민감하다. 그렇기에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데는 교육 현장과 수요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민적 동의 과정을 거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백년대계를 세워가는 교육정책이 행여 선의의 피해를 보는 수요자 층을 만들어 내지는 않나 한번 되돌아보고 보듬어 주는 촘촘함을 주문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37년 전 교육현장과 수험생들이 혼돈의 시기를 보내야 했던 모습이 오버랩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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