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는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오랜 기간 시대와 생활 방식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줬다. 풍수사상이 시작된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문헌상으로는 삼국시대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스스로 발생됐다는 자생풍수(自生風水)의 흔적이 보인다. 이와 함께 신라 말, 고려 초에 도선대사가 중국 풍수지리를 도입하면서 국가의 지배 세력인 왕조가 바뀌거나 사회의 변환기에는 항시 풍수적 사고가 대두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고려의 건국에 대한 풍수설인 경주 지세의 쇠퇴와 개성의 번성에 대한 도읍의 선정과 왕건이 후대 왕들에게 내린 훈요 10조의 차령산맥과 금강 이남에 대한 풍수적 해석이 대표적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도 개경의 지세가 약화됐다는 지기쇠왕설과 계룡산 신도안의 도읍, 한양 도읍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오늘에 와서 대한민국의 수도(首都) 이전 논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중심에 풍수는 늘 함께하고 있다.

풍수지리가 본래의 자연과학이 아닌 국가 권력자의 통치 일환으로 변모하거나 지배계층의 주거입지와 묘지풍수(墓地風水)로 전락돼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비과학적이고 허황된 학문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는 통치 권력자의 잘못만이 아니라 풍수가 사이에서도 학문이 체계화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논란으로 분란을 자초한 원인도 있다. 이제라도 풍수를 어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본연의 성격인 자연의 법칙과 우리 전통적 사고인 사람이 근본인 인본주의를 되살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에 편리하게 이용함과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풍수의 어원은 통상적으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축약된 언어로서 ‘바람을 멈추고, 물을 얻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기(氣)를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기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지만 물을 얻음으로 기가 모이게 돼 생기를 얻게 된다. 풍수의 법술(法術)에는 득수(得水)인 물을 얻는 것이 으뜸이며 바람을 막아주는 장풍(藏風)이 그 다음이다. 따라서 좋은 터전은 동서남북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을 막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이 없더라도 물이 앞에서 부드럽게 맞이하면 아름다운 땅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물과 산이 중요하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풍수는 우리 민족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지역의 풍토에 알맞은 입지를 선정하고 우주의 원리와 땅의 지세, 인간의 삶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풍수는 오늘의 우리와 후세의 삶이 보다 윤택하게 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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