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성 기자 pen@ggilbo.com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동산에 세워진 ‘일본인의 사죄비’를 무단으로 ‘위령비’로 바꾼 일본인이 경찰에 검거됐다. 조선인의 일제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사죄한 내용을 임의로 바꾼 황당 범죄행각은, 과거 일제의 만행에 반성 없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의식을 보여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은 사죄비를 훼손한 일본인 남성은 물론 이를 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일본인에 대해서도 혐의가 드러나면 검거한다는 방침이다.
천안 서북경찰서는 26일 망향의동산 내 강제징용 ‘사죄비’를 훼손시킨 혐의(공용물건손상 등)로 일본인 A(69) 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 일본의 한 포럼 연구원인 A 씨는 지난 3월 20일 오후 9시경 망향의동산 내 무연고 묘역에 있는 강제징용 ‘사죄비’ 위에 ‘위령비’라고 쓰인 석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손상시킨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사죄비를 훼손시키는 범죄 행각을 벌인 뒤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지난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스스로 입국, 경찰에 자진 출두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조사에서 A 씨는 범행 사실을 인정하며 “사죄비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달라 사죄비 명의자 아들의 위임을 받아 교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원활한 수사와 재판진행을 위해 일시 석방한 뒤 A 씨를 출국 정지했으며 추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또 조사를 통해 사죄비 명의자 아들의 교사 행위가 드러나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하는 한편 입국 시 체포할 방침이다.
이 같은 범죄 행위에 대해 지역사회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용자 천안 평화나비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잘못된 역사인식이 안타깝다.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반성하는 사죄비였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분노스럽고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국립 망향의동산 강제징용 ‘사죄비’는 일본인 요시다 씨가 지난 1983년 한국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참회의 뜻으로 세운 것이다. 그는 태평양전쟁 시기 조선인을 강제징용하고 위안부 동원 임무를 맡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강제징용 ‘사죄비’는 정부가 일제에 강제로 징용됐거나 위안부 등으로 끌려갔다가 일본 등 해외에서 생을 마친 동포들 중 연고가 없는 이들을 모셔 놓은 ‘무연고합장묘역’ 내에 있다.
천안=김완주 기자 pilla21@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