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국에도 유행이 있다

 

(지난회에 이어서) 1820~1920년 사이에는 독일인 100만 명 넘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물론 1900년대부터는 더 이상 가난 때문에 떠난 이민은 아니었다. 대다수가 보다 나은 조건 속에서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주로 전문직업인들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독일인들의 이민 길은 여전히 이어진다. 2006년에는 1만 8242명의 독일인들이 스위스로, 1만 3200명은 미국으로, 1만 300명은 오스트리아로, 9300명은 영국으로, 9100명은 폴란드로, 8100명은 스페인으로, 7500명은 프랑스로, 3600명은 캐나다로, 3400명은 네덜란드로, 3300명은 터키로, 도합 14만 4815명의 독일인들이 이민을 떠났다. 2009년에도 마찬가지다 73만 4000명이 독일을 떠났다.

특히 스위스는 독일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나라인데 주된 이유는 독일의 무거운 세금을 피하기 위함이다.

☞ 덧붙이는 글

이들의 이민사와 우리의 이민사를 비교하면 좀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본다. 우리 역시 때로는 망명처로, 때로는 곤궁한 생활을 벗어 던지기 위해 신천지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1902년 12월 102명이 인천항을 떠났다고 한다. 하와이 농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모집광고에 따른 이민 그룹이었다. 그 이후 약 3년 동안 65척의 배가 7000명가량을 하와이에 실어 날랐다. 그 다음은 태평양을 건너는 여성들이 그 부류였다. 먼저 간 한국인 남성 노동자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대략 1940년대부터는 일부 부유층만이 해외 이민을 할 수 있었고 또 빠질 수 없는 이민은 미군과 결혼했던 미군 부대 여성들이 1950년경 떠났던 이민이다.

미국이 아닌 유럽도 보자. 정부는 독일정부로부터 차관을 얻는 조건으로 1963년부터 광부·간호사를 독일로 보냈다. 이분들이 독일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이들은 독일에서 2세들을 참 잘 키워냈던 편이다.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이 독일 땅에서도 마찬가지로 꽃 피웠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많은 2세들이 의사, 교수, 약사, 변호사, 회계사, 사업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인의 위상을 독일 도처에서 높이고 있다. 최근엔 독일 가톨릭에선 2세 신부까지 나왔다. 같은 시기에 노동이민으로 왔던 터키인들에 비해서도 한국인들의 교육열은 상당히 높다는 평을 받곤 한다. 물론 터키인들 중에도 2세 교육에 가치를 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교육열에 비해서는 열세다. 이젠 우리 이민의 성격도 바뀌었다. 대략 1990년대 중반부터가 아닐까? 잘 살아보자는 구호로 떠나는 이민은 더 이상 아니다. 이젠 먹고 살 만해졌으니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나서는 이민이다. 주로 은퇴한 노년부유층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옮겨갔다. 2000년대 경에 또 한 번 변화가 있었다. 한국보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동남아로 이주하는 중산층들이 생겨났다. 주로 필리핀, 태국 쪽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이민사도 살펴보니 100~200년 전의 독일과 참 유사하다. 이런 양국의 이민사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늘 삼각형의 꼭짓점을 오르려고 하는 인간의 긍정적인 발버둥이 보여지는 듯하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