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 위원장

언젠가부터 우리 국민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들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황우석 사태로 말미암아 줄기세포에 관해 온 국민이 전문가 수준이 됐다고 쓴 웃음을 지었던 것이 오래된 기억이다. 그 후 광우병 쇠고기, 메르스 등 큰 일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의 원인과 처방을 찾으려 했다. 급기야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집단지성에 기댔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외쳤다.

정부와 전문가의 말이 권위를 잃은 불신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불신은 정부와 전문가들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를 감추는 데 급급할 뿐만 아니라 때로 거짓말까지 하다 보니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을 판국이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를 놓고 벌인 논쟁의 역사와 경험을 되돌아보더라도 전문가들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보다는 도리어 증폭시키는 일을 곧잘 해왔다.

전문가들의 지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을 다 통찰하는 지식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경험과 학습으로 체득한 암묵적 지식이 전문가들이 세운 객관적 지식보다 나은 경우도 적지 않다. 암묵적 지식이 공식적이고 보편적 지식을 압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를 들면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영국 컴브리아 지역의 목양농들이 대응한 것을 연구한 브라이언 윈의 논문이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사용 후 핵연료 건식 재처리 기술)이 일방적 정책 결정과 추진으로 파행을 빚고 있다. 2016년 7월에 열린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 이후 정부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개발을 연계함으로써 방사성 독성을 1000분의 1로 줄이고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 이하로 축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역시나 아니었다.

언론이 탐사 보도한 파이로프로세싱 관련 자료들을 보면 정부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일부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의 면적을 10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했지만 그 근거는 당초 얘기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자료가 아니라 미국 핵학회지에 실린 논문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발생하는 죽음의 재(고방사능 세슘과 스트론튬)를 어떻게 처분할지 전혀 언급하지 않다가 지하 250m 깊이에 저장시설을 만들어 300년간 보관해야 한다고 뒤늦게 밝혔다. 매년 세슘과 스트론튬 총 보관량의 10만분의 1 정도가 지하수로 녹아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파이로프로세싱으로 분리한 초우라늄 물질을 처리하려면 소듐냉각 고속로가 별도로 필요하다. 핵 선진국들이 수십 년간 매달렸지만 성공하지 못한 꿈의 원자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소듐냉각 고속로를 세계 각국이 힘을 쏟고 있는 미래기술인 것처럼 홍보해 왔다. 그런데, 미국은 1994년 핵비확산 정책으로 고속로 연구를 중지했다. 영국은 1993년에 정부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러시아만 고속로 1대를 상용화했을 뿐 프랑스와 일본은 실험용 고속로를 이미 폐쇄했거나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성에 문제가 있거나 위험성 때문인데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러한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하나, 우리나라 사용 후 핵연료의 누적량은 경수로가 약 7100톤, 중수로가 약 8000톤인데, 현재 추진하는 파이로프로세싱은 경수로 사용 후 핵연료만을 처리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24일 오후,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 전국에서 500여 명이 모여 핵 재처리 실험과 고속로 연구를 폐기하라고 외쳤다. 그들은 정부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주장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부는 환경단체와 일부 시민들의 목소리라고 애써 축소할 지도 모른다. 비록 절대적 심판관은 없지만, 민주화를 위해 이 땅의 국민이 싸워온 역사를 살펴보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세상은 알 것이다. 과학기술의 문제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