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 창작마을] 청주 문의면 마동리 18-1 구간 폐교의 깜빡 변신 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

#. 오백리길 숨은 아트로드

애물단지 폐교 이젠 보물단지
학생들 떠난 곳에 숨 불어넣어
창작 전시 등 문화공간 탈바꿈

 

어렸을 적 학교란 곳은 가기 싫었던 장소였다. 매일 반복되는 학업에 몸과 마음이 지쳤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를 초등학교로 한정해보면 추억이 된다.

낯선 곳에서 이름은 모르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늘 새로움이 가득했던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추억에 잠겨 가끔 혼자서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를 남몰래 방문해본 이들도 있을 거다. 비록 약육강식의 세계처럼 삭막한 사회생활에 찌든 성인이 됐지만 초등학교 시절 철없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친하게 지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씩 올라간다.

 

그나마 학교가 남아있다면 다행이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매개가 되는 자신의 모교가 폐교됐다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다.

사회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는 학교가 많아서다. 그러나 대청호 주변의 한 학교는 비록 폐교됐지만 이곳에서 추억을 간직한 이들을 위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지금은 거의 잃어버렸지만 부끄럽게나마 조금이라도 남은 동심과 추억을 들춰내고자 대청호 18구간에 들어서 마동으로 향한다.

 

◆ 폐교의 화려한 변신, 그 시절의 그림들이 가득한 전시실

“엄마, 조금만 더 자면 안 돼?”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갈 준비해. 너 좋아하는 달걀프라이 했으니까.”

조금 더 투정을 부릴까 했지만 달걀프라이란 말에 눈을 부릅떴다. 바로 방을 나서면 달걀프라이 때문에 나가는 쪼잔한 녀석일 것 같아 마음속으로 30을 세고 당차게 일어났다.

“더 자고 싶었는데”라고 진심도 아닌 말을 내뱉으며 어쩔 수 없었다는 듯 터벅터벅 식탁으로 앉아 아침을 먹는다.
 

“오늘 학교 준비물 있다며? 다 챙겼어?”
어머니는 점심때 먹을 내 양은도시락 제일 밑 부분에 달걀프라이를 놓고 밥으로 얹어 숨기며 묻는다. 물론 다 챙겼다. 오늘은 좋아하는 미술시간이 있으니까.

어머니 몰래 대충 눈곱만 떼고 고양이세수를 한 뒤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1등으로 등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자마자 학교로 전력 질주한다.

슬슬 더위가 오려고 그런지 달린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어차피 다시 땀으로 젖을 텐데 이럴 줄 알고 세수는 대충 했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교실엔 나 말고도 3명 정도가 벌써 등교를 마쳤다. 모두 오늘 미술시간을 기대하고 엄청 빨리 왔나 보다. 조심스럽게 미술시간에 쓸 준비물을 사물함에 잘 넣어둔다.

“야, 오늘 준비물 챙겼어?”하고 친구들에게 인사도 없이 바로 말을 건다. 새삼스러운 인사보다 더 정겹다. 미술시간에 그릴 것들에 대해, 또 어제 본 붉은 수령과 대결을 앞둔 만화 똘이장군에 대해 등 두서없이 이야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얼른 자리로 돌아가 앉아.”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머리를 콩 쥐어박는다. 미술시간은 4교시니까 다른 수업부터 들어야 한다. 눈은 바른생활 교과서로 향하지만 머릿속은 미술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슬기로운 생활과 도덕 교과서를 차례대로 펴고 평소처럼 열심히 다른 생각하다 보니 벌써 미술시간이다.

 

장롱 속 꿀단지처럼 사물함에 고이 모셔둔 미술 준비물을 꺼내고 미술실로 달려간다. 미술실엔 미술을 전공했다던 담임선생님의 그림과 관련된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여름인데도 미술실은 코스모스처럼 형형색색 화려하다.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이 캔버스에서 우아하게 춤을 춘 흔적이 아름다움으로 완성됐다.

 

화려한 색들이 고소한 인절미처럼 중독성 있다. 경찰아저씨가 짧은 치마를 입은 누나의 치마 길이를 재는 그림도 있다. 담임선생님은 풍자라고 하는데 담임선생님은 허풍이 심한가 보다. 세상에 저렇게 짧은 치마가 어디 있고 있다 한들 누가 입고 다니겠어.

고개를 돌리니 집에선 보지 못하게 했던 어른들의 그림도 보인다. 어떤 친구는 두 눈을 양 손으로 가리지만 개구쟁이들은 킥킥거리며 중요 부위를 만져본다.

집중하느라 몰랐던 유화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하자 미술실 한편으로 준비물을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 어제 TV에서 본 똘이장군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관이 명관, 그 시절을 그대로 재연한 운동장

열심히 똘이장군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얼른 교실로 달려가 어머니가 싸준 양은도시락을 열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어머니가 밑에 깔아준 달걀프라이를 몰래 한입씩 먹으면서 말이다. 밥을 다 먹고 교실 맨 뒤에 놓인 주전자로 향해 보리차를 폭포수처럼 도시락에 담는다.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를 달걀프라이 한 조각이라도 싹싹 긁어 먹기 위해서다. 배부르진 않지만 어쨌든 점심을 다 먹고 친구들과 운동장으로 나간다. 장마가 막 끝나서 그런지 굉장히 습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재밌게 놀기만 하면 되지.

“오늘은 그네 타자.”

한 친구가 소리치자 남자들이 우르르 그네로 달려간다. 그네로 달려가는 짧은 찰나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그 누구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제일 먼저 그네를 타기 위해서다. 그네가 있는 큰 나무 아래 가장 먼저 도착했다. 밥을 배부르게 먹지 않은 게 다행이다.
 

#. 옛 추억 문화향기 솔솔

교실은 갤러리와 카페로 꾸며져
작품감상하며 차 한 잔의 여유
지친 발걸음 달래는 명품 쉼터

 

 

“내가 1등. 내가 제일 먼저 타야 돼.”

그리고선 그네를 밟고 일어서 열심히 허리춤을 흔들어 본다. 그네를 타고 제법 높은 곳까지 오르자 나무 사이를 관통한 쨍쨍한 햇빛과 힘찬 매미 우는 소리가 피부와 귀를 때려 따갑다.

그래도 내가 1등으로 그네를 탔다는 기쁨이 더욱 크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지만 높은 그네 위에선 시원한 가을바람처럼 땀과 체온을 앗아간다. 이 순간만큼은 독수리오형제라도 된 기분이다. 예쁜 메텔과 은하철도를 타는 철이도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야. 10분 지났어. 이제 내 차례야.”
 

한창 마음속으로 독수리오형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분위기를 깨고 재촉한다. 그네에 내려오니 가을바람 같던 공기가 습도를 한껏 머금고 피부에 필요치 않은 수분을 제공한다. 땀이라도 식힐 겸 그네 옆 정자에 누워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 2등으로 그네를 탄 친구가 어느새 옆자리에 눕는다.

“시원한 거 마시러 가자. 탕비실에 커피라는 게 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다더라. 지금 탕비실엔 아무도 없을 걸?”
 

친구의 말을 듣고 몰래 탕비실로 향한다. 말마따나 탕비실엔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 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다.

호랑이굴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떼 결국 커피와 설탕, 프리마를 찾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선 컵에 커피 두 숟가락, 맛있는 설탕과 프리마는 다섯 숟가락씩 넣는다.

 

어머니가 평소에 커피를 만드는 걸 몰래 보고 있길 잘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뜨거운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커피에 담은 뒤 뒤도 안돌아보고 탕비실을 빠져 나온다. 맛있는 설탕과 프리마를 잔뜩 넣었으니 맛은 보나마나겠지.

“맛이 왜 이래?”

친구와 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운동장에 버렸다. 뭔가 비율이 잘못됐다. 커피를 두 숟가락이 아닌 한 숟가락을 넣었어야 했나보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시원한 걸 마셨다고 골이 아파온다. 다시 그네 앞 정자로 가 눕는다.
 

“집에 가면 뭐할 거야?” “글쎄…. 우선 태권브이부터 보고 끝나면 만나서 오징어게임이나 하자. 대신 난 잘 못하니까 깍두기 할래.”

가부도 듣지 않은 채 남은 수업을 듣고 집으로 향한다. 해 질 녘은 멀었지만 하굣길에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5리나 떨어진 집으로 달려간다. 내일은 또 뭐하고 학교에서 놀까 고민하면서.
 

평점★★★★

마동창작마을은 공식적인 대청호오백리길은 아니다. 그러나 18-1구간으로 불리며 많은 대청호를 들른 이들이 찾는 곳이다.

밖에서 봤을 땐 폐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정도로 삭막하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서면 수많은 작품이 눈을 호강하게 한다.

작품은 화려하면서도 나름대로 스토리도 갖고 있어 천천히 살피기 좋다. 뒤뜰에 있는 큰 나무엔 그네가 설치돼 그네를 타며 더위를 식히기 좋다.

전시실 바로 옆엔 무인카페가 있는데 웬만한 차 종류와 커피는 구비돼 입맛에 맞게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된다.

재즈가 흘러 분위기도 좋지만 재즈를 싫어한다면 자신의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블루투스스피커와 연결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많아 연인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 좋다. 다만 화장실 상태는 깔끔하지 않다는 점은 유의하자.

참고로 이곳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는데 한 마리는 사람을 보자마자 배를 깔 정도로 사교성이 좋지만 또 다른 한 마리는 경계심이 강하다. 섣불리 만지지 말자.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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