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암 행정학 박사

 

상아탑, 순수학문을 지향하거나 본질(本質)과 보편적 법칙을 연구하던 대학이 전문인 양성소로 변질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이 공식 전문인 양성소로 변질되면서 수많은 기능인과 기술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대학에 다니며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기업 및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스펙을 쌓는다. 그러다 보니 대학도 학문의 본질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우선으로 개설한다. 한데 자격증과 현장경험만 있으면 취업과 자기사업까지 할 수 있는 분야임에도 대학에서 학과를 개설하고, 입시 경쟁률까지 치열하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4년 동안 비싼 수업료를 내고 대학을 졸업한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학이 유행처럼 확산되다 보니 우리의 대학 진학률은 90%에 가깝다. 독일의 30%, 미국 40%, 일본 50%에 비하면 입이 벌어질 수치가 아닐 수 없다. 370여만 명에 가까운 대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연간 30조~40조 원이나 된다. 여기에 실력이 되든 안 되든 돈만 있으면 외국대학에서도 학위를 받아오니 한국은 그야말로 대학생이 지천에 깔려 밟히는 세상이 됐다.

부모들은 자식을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떠한 고통도 감내한다. 사설 학원 한 곳을 더 보내기 위해 어엿한 중산층 어머니까지 험한 허드렛일을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기 싫고 능력이 부족한 자식이 쉽사리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않지만 사회적 경쟁 메커니즘 때문에 자식을 포기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가 대학과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한 이런 부조리는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이다.

취업을 위한 기능인 양성소 역할을 하는 우리의 대학에서 학문의 본질과 이치의 깨달음을 통해 훌륭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대학이 허상에 불과한 꼭두각시를 배출하는 데 앞장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대학과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한다. 그러다 보니 전 국민이 대학생인 시대가 됐다. 대학은 그들의 탐욕을 이용해 존립하며 부를 쌓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대학을 왜 가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가니까 가고 소외되기 싫어서 돈 주고 대학 졸업장을 산다. 국내에서 경쟁에 처지면 폼을 내며 비싼 등록금을 외국대학에 갖다 바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졸업장을 갖고 들어오면 더 큰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학위를 받는 동안 강의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어학연수 수준에 그친 공부를 하고 왔는데도 말이다.

초·중·고교 과정은 대학 입학을 위한 수순에 불과하며 대학을 졸업하면 공부는 끝이다. 대학 이상의 공부 역시 보다 좋은 곳으로의 취업을 위한 교두보일 뿐이다. 이렇듯 한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교육에 쏟아부은 돈은 가계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많다. 이 천문학적인 돈이 과연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가치를 얼마만큼 높여줄 것인가.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문화, 죽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대학과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헝겊인형처럼 맥없이 주저앉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모두가 지성인인데 누가 나서 사회의 저변 일을 맡아 할 것인가. 이 땅에 먹고 노는 고급 실업자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화가 양산한 결과다.

이 땅에 농부가 있어야 식량이 생산되고 미화원이 있어야 거리가 깨끗해지듯 생산을 하는 모든 인간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음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회는 모든 사람의 가치가 함께 어우러져 존속하고 발전하는 것이지 대학 졸업장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혹시, 대한민국의 모든 취업처에서 일체의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고, 아무런 차별도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객관화된 방식으로 인재를 채용한다면 지금처럼 지긋지긋한 사교육 문제, 학벌지상주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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