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 폭 넓은 사랑을 강조한다. 모든 종교가 박애를 강조하지만 기독교가 가장 포괄적인 사랑의 범주를 제시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기독교라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의 말은 기독교가 얼마나 포괄적인 사랑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최근 충남에서 인권조례를 놓고 인권단체와 정면충돌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단체가 충남인권조례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 “동성애 및 양성애로 동성 간의 결혼을 옹호하고 일부일처제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조례 폐지를 청구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충남도를 비롯해 서울 등 9개 광역지자체 인권위원회의 협의회가 성명을 발표하고 “기독교 단체들이 차별받지 않을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인권조례를 왜곡하고 비난하는 일이 오랫동안 되풀이되고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태세이다.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대부분 인권조례가 제정돼 있고, 일부는 학생인권조례도 정착돼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도 상당수가 인권조례를 제정해 주민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런데 지금껏 별다른 갈등이 표출되지 않던 것이 요즘 들어 부쩍 표면화되고 있다.

기독교 단체들의 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움직임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선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최우선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적 지향성이 다른 소수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이웃이 아닌 것인지 그 점이 궁금하다. 하물며 원수도 사랑한다 했거늘 성적 지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의 대상에서 배제한다면 교리에 모순이 생긴다.

또 하나의 의문은 왜 하필 조례를 타깃으로 삼는지의 여부이다.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조례보다 상위법은 얼마든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비롯해 국민의 인권을 다룬 법률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실천을 강조하는 세부사항에 그치지 않는 조례를 물고 넘어진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실상 인권 문제는 모든 법 중 으뜸이라 하는 ‘헌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헌법 제10조부터 36조까지의 조항은 국민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을 통해 국민의 권리는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그러면서 헌법은 그 대상을 ‘모든 국민’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국민 누구라도 어떠한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니 인권문제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조례가 아닌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모든 국민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을 반박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 단체들은 늘 헌법이나 상위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오로지 지방 조례만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겠다.

인권 문제의 핵심은 그동안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편견이나 차별에 시달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독교에서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힘없고 소외된 이웃’을 보호해주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정작 쌍수로 환영해야 할 기독교 단체가 앞장서 인권조례 페지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된다.

전국의 많은 자치단체 중에 하필 우리고장 충남에서 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동안 인권행정 분야에서 전국의 선진사례, 모범사례로 이목을 받아온 충남이 이번 일로 보폭을 줄일까 염려스럽다. 인권 문제는 신의 입장이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을 볼 때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 사람을 가리지 말고, 조건을 두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강조한 예수의 가르침을 인간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는 일은 위험하다. 기독교 단체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이웃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으면 정말 좋겠다.

김도운 논설위원 8205@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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