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殷)나라 탕 임금이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고 “그대들이 나를 보필해 하늘의 벌을 이룬다면 장차 큰 상을 내릴 것이다. 그대들은 이 말을 불신하지 말라. 나는 말을 먹지 않는다”라고 맹세했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탕서편(湯誓篇)에 나오는 대목이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월(越)나라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왔다. 조정 중신인 계강자(季康子)와 맹무백(孟武伯)은 애공을 위로해 주기 위해 축하연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맹무백(孟武伯)이 애공을 수행하던 곽중(郭重)이 살이 찐 것을 비방하자, 애공은 “곽공이 어찌 살찌지 않을 수 있겠소? 그대들이 한 거짓말을 하도 많이 주워 먹었으니 말이오”라고 받아쳤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기록돼 있는 내용이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탕서편(湯誓篇)과 춘추좌전(春秋左傳)에 기록된 ‘말을 먹는다’는 식언(食言)은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 공주대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구성원들은 한 목소리로 조속한 대학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총장임용을 둘러싼 다른 견해와 입장차,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구성원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동상이몽인 셈으로, 지난 2014년 3월 총장선거 때부터 시작된 갈등은 여전히 봉합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총장임용을 앞둔 시점에서의 투서는 내부 갈등의 단초가 됐다. 투서는 김현규 1순위 후보자의 도덕성을 꼬집는 내용으로, 재선출을 주장하는 측은 교육부의 임용거부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반면 김현규 교수를 비롯한 지지자들은 투서와 관련한 민원조사보고서에 상당한 오류와 왜곡이 있는 만큼 억울하다는 입장으로, 만일 명백한 흠결이 있다면 자진 사퇴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1, 2심 패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임용제청 거부 사유도 밝히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김 교수가 제기한 총장 임용제청 거부처분 취소소송 또한 2년이 훨씬 넘도록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김 교수의 법적 지위다. 현재로썬 새 정부의 대학 정상화 조치가 대법원 판결보다 먼저 내려질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튼 대법원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최종 판결 전까지는 1순위 후보자로서의 자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 교수의 법적 지위는 결국 총장 재선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게 하는 소염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수상쩍은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간 수면 아래서 눈치를 보고 있던 총장 재선출 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7일 공주대 교수회와 총학생회, 경영행정대학원 원우회, 공주대 정상화를 위한 50여 개 시민사회단체 등이 공동으로 연 ‘1순위 후보의 총장 임용 촉구’ 기자회견장에서도 김현규 교수의 새삼스럽지 않은 추측성 흠결이 거론되는 일이 있었다.

올해 2월 총장후보자 선정관리위원회가 2014년 당시 대학본부가 교육부에 제출한 민원조사보고서가 문제가 있음을 밝히며 수정보고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김 교수와 관련된 악성 루머가 난무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김 교수의 법적 지위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논의를 거론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에 비춰 투표권이 임용권에 우선해야 함에도 지켜지지 못했다. 교육부의 전횡에 따른 정책적, 정치적 정의가 바로서지 못한 상황에서 이제는 대학 구성원들까지 나서 식언(食言)하며 사회정의를 부정하려는가? 본인들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하며 민주 절차에 따라 뽑은 총장 후보를 흔들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이해관계에 얽혀 1순위 후보자를 부정하려는 일부 시민들의 약삭빠른 시도 또한 경계의 대상이다.

교육부와 법원에게 공이 넘어간 단계에서 대학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키려는 시도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대학 비정상화의 책임을 김 교수에게 덮어씌우려는 교묘한 ‘물 타기’ 수법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총장 선출 방식 개선 등 대학의 자율권 보장 기류에 편승한 ‘꼼수’도 교육정의를 바로잡는데 걸림돌일 뿐이다.

이건용 기자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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