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횡청류 ‘각시네 옥 같은 마음을’

 

김천택의 ‘청구영언’의 마지막 항에 ‘만횡청류(蔓橫淸類)’ 116수가 실려 있다. 김천택은 예술적 재능이 남다른 여항가객(閭巷歌客)으로 숙종 때 포교(捕校)를 지낸 인물이다.

청구영언은 만횡청류를 이렇게 말했다.

만횡청류는 노랫말이 음란하고 뜻이 하찮아서 본보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어 일시에 폐기할 수 없는 까닭에 특별히 아래쪽에 적어둔다.

‘만횡청류’는 남녀 간의 방탕한 내용의 가사를 치렁치렁 부르는 노래다. 유교가 뿌리 깊은 조선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이런 음악이 활자화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정섭이 쓴 후발에 나와 있다.

김천택이 하루는 청구영언 한 책을 가지고 와서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책에는 … 여항과 시정의 음란한 이야기와 저속한 말들도 또한 왕왕 있습니다. … 군자가 이것을 보고 병통이 없다 할 수 있을까요?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공자께서 시경의 시를 정리하며 정풍과 위풍을 버리지 않은 것은 선과 악을 갖춰 권장하고 경계함을 보존하고자 한 때문이다.”

이정섭은 “음악을 감상함으로 선과 악을 구별 짓는 것도 나름대로 가치 있는 것”이라 해석해줬다. 김천택은 바로 이점을 주목해 아무리 지탄을 받았다 해서 한꺼번에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김천택은 고심 끝에 과감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남녀상열지사’인 만횡청류를 청구영언에 포함시킨 것이다.

‘만횡청류’에는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을 노래한 작품도 있지만,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심지어 유부녀와 외간남자, 유부녀와 승려 등 비정상적인 일탈 행위를 노래한 것들이 상당수 수록돼 있다.

각시네 옥 같은 가슴을 어이굴어 대어볼까
토면주(綿紬) 자지(紫芝) 작저고리 속에 깁적삼 안섶이 되어 존득존득 대고지고
이따금 땀 나 붙어 다닐 때 뗄 줄을 모르리라

각시네 옥 같은 가슴팍을 어떻게 좀 대어볼 수 없을까. 명주 자줏빛 작저고리 속에 깁적삼 안섶이 되어 쫀득쫀득 대어보고 싶어라. 이따금 땀나서 붙기만 하면 떨어질 줄을 모르더라.

남자는 죽도록 어떤 여인을 사랑하고 있는데, 그 여인은 꿈쩍조차 없다. 옥 같은 여인의 가슴을 만져볼 수 없어 차라리 그 여인의 깁적삼 안섶이 되고 싶다고 애를 태우고 있다. 그래야 땀 흘릴 때 그 여인의 가슴과 존득존득 닿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깁적삼은 저고리 모양의 윗도리로 땀이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입는 홑옷을 말한다. 여기서 존득존득 촉각적 언어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임 생각하기를 엄동설한에 맹상군의 호백구 같고
임은 날 여기기를 삼각산 중흥사의 이 빠진 늙은 중놈의 살 성긴 얼레빗이로다
짝사랑 외즐김하는 뜻을 하늘이 아시어 돌려 하게 하소서

맹상군의 호백구(狐白裘)는 전국시대 제나라 재상인 맹상군이 진나라 임금에게 바친 옷이다.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만든 옷으로 왕과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명품이다.

남자는 ‘맹상군의 호백구’처럼 끔찍하게 사랑하는데, 여인은 콧방귀조차 없다. 여자가 남자를 머리 깎은 늙은 중이 성긴 얼레빗처럼 대한다니 이 얼마나 절묘한 수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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