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 편씩 3년에 걸쳐 개봉되었던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편인 ‘왕의 귀환’을 보면 간달프라는 마법사를 중심으로 한 반지 원정대와 악의 군주라는 사우론과 인류의 운명을 건 마지막 전쟁을 벌인다. 반지 원정대는 절대반지를 파괴하여 악의 세력이 중간계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고, 악의 군주인 사우론은 절대반지를 통해 인간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기에 운명을 건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결말은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악은 망하고 선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즉 절대반지는 파괴되고 세상을 악으로 지배하려 했던 사우론은 멸망한다. 그래서 인류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중간계인 곤도르 왕국에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왕도 탄생한다. 그 왕이 바로 반지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아라곤이다. 아라곤은 새롭게 열리는 곤도르 왕국의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왕이 된 것이다. 그는 반지 원정대의 일원으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사우론과 맞서 평화의 시대를 연 영웅 중의 한 사람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성서의 말씀처럼 새롭게 열리는 평화의 시대에 새로운 지도자가 된 것이다. 영화는 아라곤이 악의 군주인 사우론과 맞서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지만 그 과정이 도리어 새 시대를 여는 영웅으로 다듬어져 가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인류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혼란의 시기에는 그 혼란을 잠재우는 영웅이 꼭 나타난다. 심지어 전쟁이야기 속에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있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는 혼란과 아픔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의 역사도 고난과 역경, 아픔이 때론 그 자신을 단련시켜 새롭게 도약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우리 사회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져 노숙인으로 전락한 벧엘의집 식구들에게 그 아픔과 실패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도록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곤도르 왕국의 아라곤처럼….

지난 해 말, 20대 젊은 청년 A 씨가 벧엘의집 울안공동체를 찾아왔다. 그는 아주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할머니에게 맡겨져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자라다가 여동생과 함께 보육원에서 지냈다고 했다. 20세가 되면서 더 이상 보육원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어 딱히 갈 곳도 없이 보육원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척추에 종양이 생겨 그동안 일하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술은 받았지만 허리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예전처럼 일도 할 수 없어 유일한 피붙이인 여동생 집에 얹혀살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무작정 동생 집을 나왔다는 것이다. 막상동생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도 없고, 허리통증 때문에 막노동도 할 수 없어 거리를 배회하다가 벧엘의집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다른 식구들과 대화도 거의 없었고, 주위 사람의 눈치를 많이 살폈으며, 성격도 매우 소극적이었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아직은 젊기에 막노동이라도 해서 하루 빨리 자립할 수 있을 텐데 몸도 성치 않고, 성격도 소극적이어서 그런지 한동안은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염려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은 활달해 지기고 하고, 식구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등 벧엘의집 생활에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경찰서로부터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시는지 생사조차 몰랐던 아버지, 보육원에서 형들에게 얻어맞을 때면 생각났던 아버지, 그래서 원망스럽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했던 아버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아버지가 연고가 없이 사망하셨기에 경찰이 신원조회를 통해 아들이 생활하는 벧엘의집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는 백병원으로 달려가 아버지임을 확인하고 주위의 도움으로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 그 후 그는 다행히 어머니와도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고 울안공동체를 퇴소하여 전주로 떠났다.

A 씨가 어머니에게 돌아가겠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그 길이 곤도르 왕국의 아라곤처럼 그동안 겪은 모든 고난과 역경, 상실이 그의 생애에 거름이 되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여는 왕의 귀환이 되기를 기도했다. 비록 지금까지는 인생이 꼬이고 엉켜 밑바닥까지 추락했었지만 그 모든 여정이 A 씨 인생에 희망을 열기 위한 훈련과 준비의 과정이 되어 그의 인생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그의 인생에 왕의 귀환이 되기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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