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 위원장

25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중에서 기관장의 임기가 이미 끝난 곳이 3곳이고 올해 임기가 끝나는 곳이 8곳이 있다. 거의 절반 가까이 되는 출연연 기관장이 올해 교체되는 셈이다. 이 중에서 7개 기관은 대덕연구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 시대가 끝난 이후 과학기술계 출연연 원장을 임명하면서 이른바 코드인사라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냈던 것은 이명박정부였다. 2008년 5월 이명박정부는 출연연 원장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고 이 중 절반 이상을 임기 도중에 교체했다. 비교적 정치적 입김에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과학기술계 출연연 원장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대거 교체함으로써 출연연에 끼친 충격과 악영향은 매우 컸다.

PBS(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로 인한 연구비 수주 경쟁에다가 권력에 줄서는 문화까지 가세하고 일방적 통폐합 추진 등으로 출연연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다. 뒤이어 들어선 박근혜정부의 행태는 설상가상이었다. 출연연 원장 임명에도 속칭 문고리 3인방의 힘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경영능력, 연구실적, 인품과 덕망 등으로 보아 출연연 종사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인사들이 예상을 뒤엎고 원장으로 임명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임명된 원장들이 임명권자에 대한 충성 경쟁을 하다 보니 출연연 정책이 크게 잘못됐어도 입바른 소리 한 번 못한다는 것이 연구현장의 생각들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성과연봉제 추진 등 출연연과 전혀 맞지 않는 제도를 강제로 밀어붙여도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임금피크제 동의서 강제 수거 등과 같이 탈법을 무릅쓰고서라도 정부 지침을 먼저 수행하려고 경쟁하기에 바빴다. 그러기에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대덕연구단지는 어느 때보다도 새 기관장들의 임명에 관심과 기대가 높다.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출연연 원장을 임명할 때는 후보자를 공개 모집하거나 원장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도록 정하고 있다. 공개 모집한 적은 지금껏 없고 원장 추천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3배수의 후보자를 정하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1명을 정해 이사회의 의결을 얻어 원장을 임명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 규정일 뿐이다. 출연연 종사자들은 이사장이 원장 임명에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사장은 형식적 권한을 갖고 있을 뿐 사실상 청와대나 미래창조과학부의 힘 있는 관료들이 쥐락펴락한다는 것이다. 만약 원장 임명이 이사회와 이사장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면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에 임기가 끝난 출연연 3곳의 기관장 후임자를 6월 29일 임기가 끝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결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출연연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출연연 종사자들이 자신의 기관을 이끌어갈 적임자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연 종사자들은 한 번도 그런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다. 청와대, 정부 부처, 이사장, 그리고 그 뒤에 숨은 권력들이 출연연을 맘대로 휘둘러온 것이다. 실로 출연연의 위상과 기능을 정상화하고 연구 활력을 높이려면 원장은 출연연 종사자들이 뽑아야 한다.

백 번 양보해 그것이 아직은 먼 얘기라면 원장 임명 과정에 해당 기관 종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라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직원 공청회를 열고 그 결과를 원장 추천위원회 심사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도 방안 중의 하나다. 또 원장 추천위원회에 직원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포함해야 한다. 다른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때 노동계를 포함해야 하고 특히 해당 기관 구성원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 1명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출연연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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