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낯선 여행지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 아름다운 풍광만 기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들 ‘설마’라고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우연한 만남은 여행지에서 종종 현실로 이뤄진다. 여행이 선물하는 ‘만남의 퍼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떠나는 마음이 더 부풀기도 하는데….

오늘은 여행의 기분에 설렘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는 여행지 속 이색 로맨스를 담은 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 하루,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

# 빈의 거리는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까

1. 비포 선라이즈(1995)

미국 청년 제시와 프랑스 여대생 셀린은 파리행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끌린다. 제시는 빈에서 내려야했지만 용기를 내어 셀린에게 하룻동안만 함께 빈에서 지내지 않겠느냐며 제안한다. 망설이다 응한 셀린과 함께 제시는 동틀 때까지 빈의 거리를 헤매며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다음날 아침 기차역에서 둘은 6개월 뒤 같은 자리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을 떠난다.

‘비포 선라이즈’는 여행이 어떻게 사랑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은유와 감성이 살아있는 대사가 특히나 아름다운 이 작품은 96년 국내 상영시 대성공을 거두며 연인들의 최고 데이트 영화가 됐다.

 

 이탈리아의 화려함과 인도의 이국적인 정취, 그리고 발리의 활기가 궁금하다면...

# 인생에 한번은 모험이 필요하다

2.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

안정적인 직장과 미국 맨해튼의 번듯한 아파트, 그리고 아내에게만 충실한 잘 나가는 남편 ‘3박자’를 모두 갖춘 31세의 저널리스트 리즈가 어느날 ‘정말 이것이 내가 원했던 삶일까?’라고 자문하면서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세계여행에 나선다.

이탈리아에서 실컷 먹고 즐기고, 인도에서 명상으로 자기를 성찰하고, 발리에서 진실한 남자를 만나 석양을 바라보며 뜨겁게 사랑하는 것. 30, 4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 아닐까?

 

 로맨틱한 도시 파리에서 펼쳐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클래식 감성 로맨스

# 아련하고 낭만적인 ‘파리의 순정’

3. 미드나잇 인 파리(2011)

약혼자 이네즈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곳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난 길은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여행+로맨스+시간여행’ 조합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카루젤 다리 밑의 센강 산책길, 몽마르트르 언덕의 계단, 파티가 열리던 생 루이섬 등 90년 전 모습을 지금의 파리에서 담아내며 오랜 여운과 설렘으로 남는다.

반쯤 벗어진 머리에 큰 뿔테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노(老)감독 우디 앨런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파리의 매력이 루브르박물관 같은 화려한 볼거리나 명품 쇼핑만은 아니라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펼쳐지는 7일간의 러브스토리

# 사랑에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

4.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

영화배우인 밥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일본의 낯선 문화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이제 갓 결혼한 샬롯은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왔지만, 남편에게도 안정을 얻지 못하고 외로움과 불확실한 앞날에 대해 번민한다.

호텔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이 둘은 도쿄 시내를 함께 구경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

한없이 낯설고 황량할 뿐인, 동양의 거대도시 도쿄에서 보낸 그들의 7일은 짧지만 영원히 기억될 만남이 된다. 둘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호텔 침에도 누워 이야기도 하지만 육체적인 소통과는 거리를 둔다. ‘세상에서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성에 대한 이끌림’이 또렷이 드러나며 인생의 허허로움까지 슬쩍 건드리는 이 영화의 속살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그 울림은 깊고도 강하다.                                                                 <사진=네이버 영화>

박동규 기자 admi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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