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여름철만 되면 생각나는 보양식 중 하나가 추어탕이다.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만원 지폐 한 장으로 여름철 무더위를 식혀줄 수 있으므로 누구나 편하게 즐기는 서민 음식이다. 인기를 증명하듯 요즘은 탕뿐만 아니라 전골, 튀김, 만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음식으로서의 진가는 증명했지만 미꾸라지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부터 그리 호의적이진 않았다.

추어(鰌魚)는 미꾸라지를 가리키는 한자어다. 중국 청나라의 서가가 쓴 ‘청패류초’ <동물>편에 의하면 미꾸라지는 추어(鰍魚)로도 쓰는데 먹을 수가 있고 모양은 뱀장어와 비슷하며 길이는 서너치 정도가 된다. 몸은 둥글지만 꼬리는 넓적하고 색은 청흑색이며 비늘에 끈적한 점액이 있다. 항상 민물의 진흙 속에 서식하기 때문에 이추(泥鰌)라고도 한다면서 강이나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와 달리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엔 추어탕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추두부탕(鰍豆腐湯)’이라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것은 솥에다 두부와 미꾸라지를 넣고 불을 때서 미꾸라지가 뜨거워 두부 속으로 들어가면 참기름으로 지지는 방식이라 지금의 조리법과는 조금 다르다. 특히 미꾸라지가 남자의 양기를 불러오는 효능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추어가 양기를 보완하는 대표 음식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양반가들은 드러내 놓고 먹기를 낯부끄럽게 여겼다. 체통과 체면을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서민이나 천인(賤人)들만 먹는 하찮은 음식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하층민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성균관의 천민인 반인(泮人)들도 즐겨 먹었다고 했으며 워낙 남자에게 좋다는 내용만 부각돼서 소설 ‘금병매’에서도 남성성의 대표 음식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렇듯 양반들의 속마음은 아닐지 몰라도 일단 그들이 꺼리는 음식으로 낙인찍다 보니 당대 문장가들의 글에서도 미꾸라지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송나라 소식의 ‘획어가’에선 포학한 위정자들의 풍자를 위해, 다산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재물(財物)을 얻고자 하면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고 만다는 것을 경계해주기 위해, 임진왜란 당시 송응창이 선조에게 올린 격문(檄文)에선 일본을 하찮은 미꾸라지로 비유한 것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대우받았다.

미꾸라지에 대한 학대(?)는 최근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초부터 나름 고상하고 품격 있게 ‘법’이라는 단어까지 붙인 신종 개체의 미꾸라지가 나타난 것이다.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주범들이 법망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법꾸라지’라는 새로운 어종으로 만들어냈다. 지능이 뛰어난 고단수 어종이라고나 할까. 이외에도 미꾸라지를 용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보거나 모래를 쑤시고 흙탕물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비유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오랫동안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한 미꾸라지의 지대한 공로를 인정해야만 하지 않을까. 늘 푸대접만 받는 신세였던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추된 명예를 빨리 회복해줘야 한다. 우선 먼저 ‘적폐종’인 법꾸라지부터 우리 사회 밖으로 밀어내야만 할 것이다. 이제 다신 이러한 억울한 누명에 연루되지 말고 서민들의 건강지킴이로서 꾸준히 사랑받는 추어의 명성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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