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또는 ‘NO’라는 분명한 의사표현에 직면할 때 우리는 흔히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 갈등이나 불이익을 의식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어중간한 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상대방이 지인이거나, 친척이거나, 동료인 경우 더더욱 양극단을 피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공주 우성농협이 불법 리베이트 건으로 시끄럽다. 전·현직 이사와 감사 12명이 농기계 구매와 관련해 수천만 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농협중앙회 감사가 예고되는 등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사건의 발단은 7년 전인 지난 2010년 친환경광역살포기를 구입하면서 모 업체로부터 리베이트 명목으로 3000만 원을 건네받은 것. 당시 이사와 감사들은 장학금 지급과 성금모금 등 이 돈의 사용처를 여러 모로 고민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수년이 지난 뒤 나눠가졌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업체에 돌려줬다는 것.

문제는 농기계 구입자금 1억 7200만 원에 5500여만 원의 자부담을 제외한 돈에 도비, 시비, 농협중앙회 자금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업체와 일부 임원들의 이익이 부합하면서 더 싸게 살 수 있는 농기계를 비싸게 주고 산 셈이 됐고, 농기계 보조금은 ‘눈먼 돈’이 돼버렸다. 비단 우성농협만의 문제가 아니라 친환경광역살포기를 구입한 여타 농협들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는 눈치다.

끝내 감춰질 것으로 알았던 비밀이 임원들의 제주도 여행으로 불거졌고, 올해 초 이사 선거로 공론화되기 시작해 2000여 조합원은 물론 웬만한 지역주민들까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렸다. 이사들 간의 내부갈등은 점점 증폭돼 지난 25일 대의원임시총회 연루된 이사·감사 해임 건이 상정됐으나 26대 26 동수로 부결 처리됐다.

우성농협의 사태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공주와 같은 중소도시의 경우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다보니 운신의 폭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러 경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강요 아닌 강요에 직면할 때가 많다. 혹여 강요 아닌 강요에 반대라도 할라치면 ‘왕따’되기 십상이다.

작은 조직으로 갈수록 이상한 연대감이 횡행한다. 소규모 지역사회의 각별하고 끈끈한 연대감은 반기를 들기 어렵게 한다. 조직의 이익이 대의에 우선하면서 조직에 반기를 드는 행위는 금기시되기 일쑤다. 아군 아니면 적군, 이것 아니면 저것, 흑 아니면 백의 단순논리에 지배되면서 쉽게 ‘NO’라고 외치지 못한다.

불의와 거짓 앞에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인간관계에 얽히고 이해관계에 얽혀 진실을 외면하고 부정과 타협하게 된다. 다수의 의견 앞에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고,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치부된다.

우성농협의 경우도 조직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 앞에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거나 희생당했으리라. 뒤늦게나마 안으로의 해법을 모색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해임 건 부결과 잘못을 뉘우치고 돈을 돌려준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조합 갈등과 불신의 진원지로서 백배사죄하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

조합과 조합원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거듭나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찾아 면죄부를 주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는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현재와 미래를 저당 잡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엔 칼을 들고 눈을 가리고 있다. 눈을 가린 것은 어떤 판단도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비나 사랑을 내세워 불의와 타협하려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니라 계산이며, 백해무익이다. 사랑은 정의와 부합 때만이 조화롭다. 우성농협 가족들이 정의의 여신 디케의 모습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이건용 기자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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