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지난달 취재차 캐나다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현지 대학원에 다니는 한 교포를 만났다. 15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는 그는 한국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했었고 지금은 교육 관련 분야를 공부한다고 했다. 아내와 슬하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같이 한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한국과 캐나다 초등학교 교육의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한국과 캐나다는 교육제도나 체계 등에서 다른 점이 많지만 놀게 하는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공부보다는 노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하고 수업도 노는 것처럼 한다고 했다. 노는 수업 속에서 사고력을 키우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배양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수학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아이들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길잡이 역할만 한다고 했다. 이런 학교의 교육 방식은 가정으로까지 전이돼 가능하면 각 가정에서도 노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고 있고 시간 나는 대로 아이들과 놀이를 같이 한다고 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으로 끌려 다니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보아온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여서 한동안 그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어릴 적부터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나라도 없다. 한데 어우러져 놀면서 인성과 사회성을 기르도록 하기보다는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는 것을 중시하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는 아이러니가 우리 가정과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빗나간 교육열과 잘못된 교육제도는 아이들에게서 놀이 문화를 빼앗아갔고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골목에서 아이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에 실려 매일 몇 개씩의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노는 시간은 사치스러움 자체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는 충남교육청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설문조사에서 충남 도내 초등학생 10명 중 2명은 하루에 1시간도 놀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3.47%는 노는 시간이 전혀 없다고도 했다. 반면 어린이 10명 중 8명은 1개 이상의 학원에 다니고 있고 20%는 하루 3개 이상의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부모와 함께 놀러가자는 것이나 놀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답한 것만 봐도 아이들이 얼마나 노는데 목말라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음껏 뛰고 놀아야 할 어린 시절을 우리 아이들은 공부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대면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교육학자들은 노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다고 말한다. 많은 학부모들은 ‘학원이나 교습소를 찾아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학교에 가기 어려운 판에 놀게 하라니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냐’라며 목청을 높일지 몰라도 교육의 패러다임은 아이들을 많이 놀게 하고 노는 법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시간만큼 즐거운 때가 없다. 놀이를 통해 학교에서의 긴장과 학업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억압된 감정을 한껏 분출시킬 수 있어서다. 단순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놀면서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탐색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운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자아의식을 강화하고 사회성도 키워간다. 그런데도 공부하기만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권리 침해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을 짓밟고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했던 기성세대 부모들의 이기적이고 그릇된 교육관일 뿐이다.

초지능화 시대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고정된 사고나 틀에 박힌 지식으로는 다가올 험난한 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창의적 사고와 타인과의 협업, 소통을 통해 제3의 지식을 창조해 나가는 미래형 인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창의적 인재를 만드는 밑거름이 노는 것이다. 아이들을 잘 놀게 하는 것이 바른 인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우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노는 것이 교육인 시대다.

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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