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맹상군가 ‘천추전 존귀키야’
 

천추전(千秋前) 존귀키야 맹상군(孟嘗君)만 할까마는 천추후(千秋後) 원통함이 맹상군이 더욱 섧다

식객(食客)이 적돗던가 명성(名聲)이 고요턴가 개 도적 닭의 울음 인력으로 살아나서 머리 희어 죽어지어 무덤 위에 가시나니 초동목수들이 그 위로 거닐면서 슬픈 노래한 곡조를 부르리라 혜었을까 옥문조일곡금(雍門調一曲琴)에 맹상군의 한숨이 오르는 듯 내리는 듯

아이야 거문고 청쳐라 살았을 제 놀리라

맹상군가는 작자 미상의 작품으로 제목이자 악곡명이기도 하다. 단편 가사로 장가, 사설시조의 형태와 비슷하다. 맹상군의 생애를 슬퍼하고, 살아있을 동안에 한껏 놀며 즐기자는 내용이다. 주제가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와 비슷하다. ‘청구영언’·‘교주가곡집’ 등에 전하고 있다.

오래 전 존귀하기야 맹상군만 할까마는 오랜 뒤의 원통함이 더욱 서럽구나. 식객이 적었던가 명성이 없었던가 개 도적 닭의 울음 인력으로 살아나서 머리 희어 죽어서는 무덤 위에 가시가 나고 소치는 아이들이 그 위를 거닐면서 슬픈 노래 한 곡조를 부르리라 생각이나 했었던가. 옹문조 일곡금에 맹상군의 한숨이 오르는 듯 내리는 듯, 아이야 청줄을 쳐 곡조를 맞추어라 살아있을 때 놀리라.

맹상군은 중국 전국시대의 제의 왕족으로 진·제·위나라의 재상을 역임한 정치가다. 조의 평원군, 위의 신릉군, 초의 춘신군과 함께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로 불린다. 맹상군은 출신 신분 관계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인물이라면 누구나 식객으로 받아들였다. 개 도둑 출신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까지도 받아들여 다른 식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맹상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진의 소왕은 그를 초빙했다. 맹상군은 진나라의 재상이 됐다. 진의 신료들은 그가 제나라 사람이므로 필시 진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해 소왕은 결국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때 개 도둑 출신인 식객이 맹상군이 왕에게 선물했던 호백구를 몰래 도둑질해와 왕의 애첩에게 바쳤다. 맹상군과 그의 일행은 그녀의 도움으로 무사히 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국경에 도착했으나 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뒤에는 진나라 군사가 쫓아오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이제는 닭울음소리 잘 내는 식객이 ‘꼬끼오’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성안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댔다. 경비병들은 날이 샌 줄 알고 성문을 활짝 열었다. 이렇게 해서 맹상군은 무사히 진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제나라로 돌아와 제의 재상이 됐다.

두 식객이 없었더라면 어찌됐을까. 하잘것없는 재주라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는 법이다.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성어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라고 적고 있고,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사자성어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옹문조 일곡금’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거문고 명인 옹문주가 거문고를 타서 맹상군을 흐느끼게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쳥처라’는 거문고의 현을 조율할 때 괘하청을 쳐서 음을 맞춘다는 뜻이다.

살아서 산해진미는 무엇이며 억만금은 또 무엇인가. 죽어 술 한 잔 먹을 수 없고 무덤에 십 원 한 장 갖고 갈 수 없다. 이럴 것이라면 남에게 베풀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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