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 경감

 

“조선시대에는 실록을 4군데에 나눠 보관했고 임금도 사초를 볼 수 없었다는데 그거 알아?” 저녁 뉴스를 보던 아내가 뜬금없이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학교 다닐 때 다 배웠고, 시험에도 자주 나왔잖아. 그것도 몰라?”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아내의 표정이 급변했고 대화는 그걸로 끝이 났다. 알고 있으면 조근 조근 설명해주면 되지 애들 앞에서 그렇게 면박까지 줄 필요가 있냐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청 서운했는지 다음날에도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고 둘 사이에는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생각해 보니 아내가 평소 애들 교육문제 등 집안일을 상의하자거나 고민을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남의 일처럼 흘려듣고 귀찮다는 듯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내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 필요한 대답을 제대로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또 다른 갈등의 빌미가 되곤 했다.

이런 일은 비단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중에도 유독 다른 사람의 고민을 잘 들어 주고 해결책까지 제시해주는 친구가 있다. 자연스럽게 고민이 있는 친구는 그 친구를 찾게 되고 친구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다. 똑같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어떤 직원은 신고자나 민원인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반면 어떤 직원은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또 다른 민원을 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제때 제대로 주지 못하면 문제가 불거지기 마련이다.

새 정부 들어 사회적 약자보호가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되었고, 경찰에서도 추진본부까지 구성해가며 젠더폭력 근절, 학대·실종대책 강화, 청소년 보호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3대 치안정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치안정책의 성패는 결국 경청과 응답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사회적 약자에게 제때 제대로 된 도움을 주고,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찾아내어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경찰의 존재 이유인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경청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응답 또한 뒤따라야 한다. 경청과 응답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는 사소한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경청과 응답은 가정이나 직장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출발점이자 기본이다.

권덕원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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