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학교 교목

 

전북 전주에 가면 한옥마을과 그 일대를 다니며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사진을 무료로 인화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건은 단 하나다. 손가락을 걸며 한 달 안에 나눔을 실천하거나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말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전부다. 이 약속으로 사진을 받아든 사람들은 사진을 볼 때마다 약속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 일을 하는 이들은 말한다. 그런 착한 약속들이 모여 세상이 바뀔 것을 기대한다고.

‘이름 없는 학교’라는 단체의 얘기다. 학교라고 했지만 학교는 아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누구나 사랑을 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명예도 아니다. 오직 꿈을 꾸는 사람들, 꿈을 이루길 원하는 아이들에게 모든 걸 전해주는 학교이기에 이름 없는 학교라고 한다. 이름 없는 학교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들은 선한 행위를 통해 보람과 기쁨을 얻기 원한다. 이른바 봉사의 동기다. 봉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선행이다. 보람과 기쁨을 맛보고자 시간을 할애하고 수고를 마다치 않으며 갖고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봉사가 갖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자기 의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자기 존재를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선행이기보단 자신의 인정욕구가 채워지길 원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봉사를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오히려 상처를 받는다. 시작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오래도록 봉사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다. 봉사라고 하는 기막힌 명분이 있고 자존심과 체면에 손상받지 않으며 봉사를 핑계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원하니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남을 돕겠다는 선한 마음에서 봉사를 시작했지만 실상 의로운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수고에 따른 정신적 혹은 물질적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다.

봉사의 동기가 충족돼야 지속가능한데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면 대부분 인정욕구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땀을 흘리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면 자신의 존재가 빛이 나고 인정받게 되면 어지간한 일도 참아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봉사 동기를 보람과 기쁨으로 생각하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선행과 의는 다르다. 양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봉사하고 대가가 주어질 때 희생한다면 선행이라 할 수는 있지만 의로운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 믿을 만한 사람, 혹은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평가가 뒤따라야 뿌듯함으로 느낀다면 자기만족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하기 적절치 않다. 때로 이런 마음이 지나쳐 타인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을 갖거나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선행은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누는 걸 말한다. 자신에게도 필요 없는 것을 나누는 건 이웃에 대한 배려 혹은 예의이지 참된 의는 아니다. 나누고자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어야 한다. 목숨 걸고 지킬 수 있는 걸 나눠야만 가치 있고 참된 의가 될 수 있다. 세상은 이것을 희생이라 말하고 종교는 사랑 혹은 자비라고 한다.

의로움은 조건이 있다. 우선 ‘내 것’이라는 집착과 소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은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나눠야 한다. 대부분의 봉사가 의로움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이 주고 싶은 것만 주려하기 때문이다. 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불의가 익숙한 세상에서 생명을 느끼기 위해서다.

내 몸을 통과한 호흡이 너의 몸으로 흘러들어가 생명의 기운이 된다.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 했다. 생명은 곧 생명을 먹고 산다. 너 없는 나는 없고 나 없는 너도 있을 수 없다. 장자는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에서 붕어는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신다”고 했다. 이런 작은 몸짓이나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속에 길들여진 짐승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누구라도 좋다 사랑한다 말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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