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영화들

영화 ‘택시운전사’의 상승세가 무섭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켄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에 데려다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11일 하루 38만 1704명을 동원, 누적관객수 655만명을 돌파하며 올해 첫 천만영화가 될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거창한 대사도, 감정을 쥐어짜듯 울부짖지도 않지만 ‘시대의 비극’을 두 외부인의 시각을 통해 객관적이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주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비극’을 기억하는 영화들을 정리해 볼까 한다.

 

영화 '꽃잎'은 무자비한 폭력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렸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1. 꽃잎(1996)

최윤 작가의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를 원작으로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장선우 감독이 비극적인 항쟁의 아픔을 스크린에 옮겼다.

무더웠던 1980년 5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도망친 충격으로 미쳐버린 소녀와 우연히 이 소녀와 만나 동거를 하게 된 거친 성격의 인부 장을 중심으로 ‘그날의 광주’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녀를 ‘미친 년’으로 취급하던 장이 차츰 광주를 알게 되고, 마침내 그녀의 고통과 열병을 함께 앓는 변화가 극적이다. 아무도 자신있게 떨쳐내지 못하는 광주에 대해 영화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면서, 그 상처를 씻김굿처럼 씻어내려고 한다.

어린시절 회상장면에서 오빠의 친구들 앞에서 김추자의 ‘꽃잎’을 간드러지게 불러젖혔던 16세 이정현은 과감하고 파격적인 연기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영호의 절규,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무엇이 이 남자의 삶을 으스러뜨렸나

2. 박하사탕(1999)

1999년 봄 야유회-중년의 김영호, 그는 친구들을 따라 20년 전에 왔던 야유회 장소에 찾아오지만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없다. 마이크를 손에 들고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기찻길로 뛰어올라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영호의 절규, 그 소리는 기적소리를 뚫고, 오늘에서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리얼리즘 수작 ‘초록 물고기’로 데뷔한 이창독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삶의 벼랑에 선 중년남자 김영호의 현재에서 시작해 20년 세월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7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야기 중 6번째 챕터에서 5월 광주의 풍경을 묘사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으로 급파된 전방부대 신병 영호는 그 곳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학생을 얼결에 사살하고 그렇게 순수의 시절로부터 뒤돌아서서 서서히 삶의 진창에 발을 들이민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한 남자의 삶을 황폐화시킨 그 시작은 바로 ‘5월의 광주’였다고.

영화 ‘꽃잎’에서 소녀의 오빠 친구들 중 하나로 얼굴을 비친 설경구는 첫 주연작이었던 이 작품으로 모두가 주목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사이로 계엄군의 시민들을 향한 발포장면은 그날의 아픔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 평범한 사람들이 맞닥뜨린 잔혹한 세상

3. 화려한 휴가(2007)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간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인 광주 시민군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무고한 시민들을 총칼로 제압하는 군인들과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시민군을 결성해 결말을 알 수 없는 사투를 보여줌으로써, 군부독재의 폭압에 휘말린 5·18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얘기하며, 당시 벌어진 계엄군의 잔혹함을 폭로한다.

광주 금남로 도청 앞에서 시민과 계엄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사이로 계엄군의 시민들을 향한 발포장면은 그날의 아픔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안성기, 김상경, 이요원, 이준기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됐고,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도 성공해 730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제목은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대원의 수기 제목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그'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중삼중으로 특별경호를 받으며 너무나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 학살의 주범 ‘그 사람’을 단죄하라

4. 26년(2012)

2006년 4월 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연재한 강풀의 동명웹툰 ‘26년’을 영화화한 작품.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2세라는 공통분모들 가진 광주 수호파 중간보스 곽진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 서대문소속 경찰 권정혁이보안업체 대기업 회장 김갑세를 중심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나서는 내용을 담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실존인물로 추정되는 ‘그 사람’을 타깃으로 한 ‘암살 프로젝트’를 엮은 내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개봉 몇 해 전부터 제작에 나섰지만 돌연 투자 거부 등으로 제작이 무기한 연기돼 ‘외압’ 논란도 일었다. 결국 일반관객의 제작비 모금 등으로 4년 만에 촬영을 재개해 개봉했다.

개봉과 동시에 장기독주 중이던 송중기 주연의 ‘늑대소년’을 끌어내리며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원작에 한참 못 미치는 영화화’라는 평가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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