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대분 차량 120만점 …7회 유찰로 무잉여 처분
“역사의 죄인 됩니다.”호소… 경매신청인들 포기

▲ 지난해 11월 옛 연수원을 찾은 전국의 학부모 학생 등 20여명이 강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폐기물더미에 묻힌 일기장 등 유물을 찾고있다. 서중권 기자

지난달 20일 오후 2시 30분 대전시 중리동과 오류동 소재 2곳 창고에서 이례적인 광경이 벌어졌다.

법원의 경매가 시작된 것. 경매가는 70만 원과 36만 원 등 모두 합쳐 고작 106만 원이다. 그러나 경매신청인들의 표정은 여느 경매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 역력하다.

또 몇몇 사람들 손에는 ‘사랑의 일기 연수원 자료를 처리하시면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사랑의 일기 학생들의 소중한 일기를 지켜주세요’라는 피켓을 들었다. 일기연수원을 가슴에 품은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경매 때마다 물품이 처분되지 않도록 호소하는 시위를 계속해 왔다. 이번이 7번째다.

◆ 7회 유찰로 경매불능 처분

결국 경매는 최종 유찰됐고, 법원은 경매불능(무잉여)으로 처분했다. 산산이 흩어져 사라질 위기, 120만 점의 여린 숨결은 천신만고 끝에 고향(일기 연수원)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법적 효력을 얻게 된 것.

이날 피켓을 든 학부모들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침묵 속에 핀 영혼의 결정체(結晶體)다.

이 경매에 참여했던 경매신청인들은 “돈도 좋지만 차마 학생들의 혼이 담긴 일기장과 작품 등 기록물을 살 수 없어 매수를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LH가 세계유일의 일기박물관 ‘세종 사랑의 일기 연수원’에서 트럭을 동원, 강제철거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9월 28일.

LH는 트럭 116대 분량의 사랑의 일기 연수원 자료를 강제 집행했다. 집행비용만 해도 4400여만 원을 들였지만 단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한 꼴이 됐다.

지난해 12월 12일 1차를 시작으로 7차례 유찰되면서 경매절차가 일단락 된 것이다. 경매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이 역사의 기록은 후대에 ‘타산지석’의 교훈을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유물 가운데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전시한 ‘우리 살던 고향은- 세종시 2005 그리고 2015’ 전시회에 출품됐었다. 당시 출품한 14건 20점은 문화재 보험금이 1억 24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료다.

◆ 120여만 점 보관할 장소 없어 발만 동동

지금까지 연수원 측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LH의 강제철거 이후 고진광 연수원장은 철거된 사랑의 일기 연수원 자리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생활해오고 있다. 그러나 단전과 단수 등 최악의 생활수준으로 내몰리고 있는 처지다. 지난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다 못해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등 난민 못지 않은 비참한 생활이다.

이런 가운데 고 원장은 폐 콘크리트 더미와 와 땅속에 묻힌 자료들을 발굴하는데 온 힘을 쏟아왔다. 지금까지 일기장과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 등 수천 점을 찾아 컨테이너 옆에 보관하고 지키고 있다.

“연수원을 아껴 주시는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고 원장은 “세계유일 기록문화가 없어지거나 훼손될 우려가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무려 120여만 점의 방대한 기록문화. 결국 연수원에 되돌아 왔지만 옮겨 보관할 장소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연수원 측의 입장이다.

고 원장은 “현재 LH세종본부와 세종시, 건설청 등 각계기관 관계자들과 협의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쉽지 많은 않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보관할 곳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힘겹게, 힘겹게 사랑의 일기 연수원에 되돌아온 120만 점의 여린 숨결, “끝나지 않은 싸움, 진행 중이다.”

세종=서중권 기자 013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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