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과 영혼

▲큐피드 에로스의 키스에 깨어나는 프시케. 루브르 박물관 소장.

◆에로스(Eros)와 프시케(Psyche)

에로스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의 신부 예쁜 프시케는 ‘영혼’이라는 뜻을 가졌다. 사랑과 영혼은 이 둘에게서 나왔다. 그리스 말인데도 왠지 나비가 연상됐는데 프시케의 상징이 나비여서 그랬나보다. 너무 아름다워 모든 이의 찬사를 받았던 프시케는 신분도 고귀한 공주였다. 얼마나 예뻤는지 공주를 보기위해 천지사방에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살아있는 여신과도 같은 프시케를 보며 사람들은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을 섬기지 않았고 신전은 더러워졌다. 예쁘다는 말은 아프로디테에게만 해당돼야 했던 걸까? 철없는 여신은 자신보다 예쁜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는 곧 아들을 시켜 사랑받지 못하게 되는 쓴 약을 뿌리고 오라고 시킨다. 에로스는 엄마 말을 듣고는 세상으로 내려가 프시케에게 마법의 약을 뿌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프시케를 사랑하게 된다. 약기운이 돌자 프시케에겐 어떤 인간도 청혼을 하지 않게 됐다. 다 큰 딸에게 혼사가 없자 아버지는 프시케를 위해 신탁을 받는다. 신탁은 프시케가 인간의 사랑이 아닌 신의 사랑을 받게 될 여인이니 신들의 공간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신탁을 들은 바람의 신 제피로스(Zephyros)와 헤르메스(Hermes)는 그녀를 안아서 산속 궁전으로 데려다 줬다.

그렇게 프시케는 결혼을 했다. 밤마다 내려 온 이름 모를 신랑은 달콤하고 따뜻했지만 웬일인지 얼굴을 보여주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혼집에 놀러온 두 언니가 프시케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잘 살고 있는 막내가 질투가 났던 건지 모르겠지만 동생에게 “네 신랑이 괴물일수 있으니 자고 있을 때 칼과 등잔을 들고 들어가 괴물이면 죽이고 신이면 등잔을 끄고 모르는 척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시케는 언니들 말대로 남편이 잠든 침대로 칼과 등잔을 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등불 밑 꽃같이 아름다운 남편 얼굴에 넋이 나가 그만 뜨거운 등잔 기름을 쏟고 말았다.

놀라서 깨어난 에로스는 자신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프시케에게 화가 났고 기름에 타버린 어깨가 너무 아파서 하늘로 돌아가고 말았다. 프시케는 후회했지만 그래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호기심은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시케의 사랑은 이제부터다.

◆지옥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프시케는 몇 날 몇 일을 울면서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빌었다. 여신은 자신도 즉흥적으로 살아가면서 프시케를 강하게 압박했다. 의심이 싹튼 자리에 사랑이 자리할 수 없다며 아들은 괘씸한 너로 인해 어깨를 다쳐 많이 아프니 죽이지 않은 걸 감사하라며 쫓아버리고 만다.

그러나 프시케는 줄기차게 매달려 올림포스까지 찾아갔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아들도 색시가 보고 싶어 끙끙 앓아가며 프시케를 찾자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심정으로 처벌을 대신할 과제를 준다.

먼저 여신의 비둘기에게 먹일 조, 보리, 기장, 납작 콩 등의 곡식을 모두 쏟아놓고 각각 종류별로 오늘밤까지 나누라고 시켰다. 프시케가 불가능한 미션이라며 엉엉 울고 있는데 개미들이 나타나 이건 껌이라며 단숨에 해치우곤 사라졌다. 그러자 미션은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미션은 성질 사나운 양털을 얻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시케는 이 또한 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얻어낸다. 그리고 마지막 미션이 주어진다. 아들 간호하느라 주름이 생겼으니 지하 세계에 가서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 예뻐지는 크림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지하세계에 가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프시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하곤 탑에 올라가 뛰어 내리려했다. 그러자 탑이 갑자기 울지 말라며 저승에서 카론(Charon)에게 돈을 주고 배타는 법,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Kerberos)를 따돌리는 법, 페르세포네를 찾는 법을 알려준다.

이렇게 프시케는 아프로디테가 준 작은 상자에 화장품을 받아 땅에 도착했고 서둘러 하늘로 올라갈 채비를 한다. 페르세포네는 상자를 절대 열지 말라며 신신당부했지만 과연 절대로의 힘은 절대적으로 열게 했다. 하늘로 가면 곧 남편 에로스를 만날 프시케의 몰골은 지옥까지 다녀오느라 말이 아니었다. 그 때 불쑥 아프로디테의 화장품이 생각났다. 아름다워지는 화장품이라는데 조금만 찍어 바르면 피부에 광이 날 것만 같았다. 아름다움의 신이 아무거나 바를 리 없다고 판단한 프시케는 바로 뚜껑을 열고 말았다.

여자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남자의 성욕보다 강하다더니 이해가 가다가도 어이가 없다. 그 순간에도 예뻐지고 싶었을까? 그렇게 열린 상자 안엔 죽음의 잠이 들어 있었고 프시케는 거리에 쓰러지고 만다. 이미 다 알고 있었을 아프로디테였다.

회복한 에로스는 거리에 쓰러진 프시케를 안고 깊은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프시케가 깨어났고 올림포스로 남편과 함께 올라가 어머니를 설득해 제우스(Zeus)의 주례로 결혼하며 영원히 살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는데 이름이 ‘기쁨’이다.

잘 보면 프시케를 데메테르(Demeter), 제피로스, 헤르메스, 페르세포네 등 신들이 끝없이 도와주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남신들은 예쁘면 무조건 옳기 때문에 프시케 보는 재미에, 여신들은 아프로디테가 꼴보기 싫어서 도와준 거다.

▲윌리암 부그로가 1889년 완성한 에로스와 프시케. 보라색 빛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프시케 신화 속엔 콩쥐 팥쥐, 미녀와 야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많은 동화가 나온다. 신화는 참 다양한 데 사람은 참 안 변한다. 만족한 프시케의 얼굴이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William-Adolphe Bouguereau) 그림 속에 작렬한다. 어쩌면 저런 보라색을 낼 수 있을까?

▲윌리암 부그로가 그린 아기 에로스와 프시케.

윌리암 부그로의 보라색만큼 아름다울까. 아기 에로스와 프시케를 다시 그려뒀다. 귀엽고 예쁘구나! 나는 고전시대를 사랑했던 워터하우스(Waterhouse)보다, 카바넬(Cabanel)보다, 부그러의 선이 좋다. 부그러는 어렵게 자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참 고운 눈을 가진 화가였다. 젊음을 고정시키는 마법을 부리듯 젊은이의 영혼을 그림에 발라 언제나 생기가 넘쳤다. 한 쪽에선 밀가루 포대를 쏟아 놓은 부자연스러운 그림이라고 혹평했지만 인상파들도 부그러의 천재성만큼은 인정했다. 세잔(Cezanne)의 혹독한 미움을 받던 잘 나가는 화가였다. 난 하야면 무조건 예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기준이 그렇다.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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