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학교 교수

“어서 오시오, 나그네여! 이곳 우리 곁에서 그대는 환대받을 것이오. 우선 식사부터 하고 그대의 용건을 말하시오.”(‘오뒷세이아’ 1권 123~125행) 오디세우스 아들 텔레마코스가 문간에 있는 나그네에게 하는 말이다. 그때까지 나그네는 오랫동안 서 있어야 했다. 주인이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오디세우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텔레마코스는 성년이 되기 전이었다. 그의 집은 오만불손한 구혼자들로 넘쳐났고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주인은 아랑곳 않고 자기들끼리 먹고 마시면서 잔치라도 벌인 듯 남의 재산을 축내며 떠들썩하게 놀았다.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텔레마코스는 나그네를 보자 곧장 바깥 대문 쪽으로 갔다. 오랫동안 문간에 서 있게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나그네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오른손을 잡고 청동 창을 받아들며 환영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나그네가 지쳤거나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편안하게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리넨이 깔려 있고 밑에는 발을 위한 발판이 달린 아름다운 안락의자였다.

텔레마코스의 호의는 자리를 안내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 옆에다 등받이 의자 하나를 자신을 위해 갖다 놓았다. 나그네가 떠들썩한 구혼자들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오만불손한 자들 사이에서 식욕을 잃을까 염려되는 데다, 떠나고 안 계신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그네에게 자기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려는 배려였다.

그런 연후에 몸을 씻게 하고 음식을 주었다. ‘황금 물 항아리를 가져와 손을 씻으라고 은(銀)대야 위에 물을 부어주더니 그들 앞에 반들반들 닦은 식탁을 갖다 놓았다. 그러자 가정부가 빵을 가져와 그들 앞에 놓고 그 밖에도 갖가지 음식을 올리더니 자기 옆에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건네주었다. 온갖 종류의 고기가 든 접시들을 배식대에서 꺼내 놓았고 그들 앞에 황금 잔을 놓았으며 전령이 부지런히 오가며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음식을 먹고 마신 후 텔레마코스는 나그네에게 자기 사정을 말하며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전에도 온 적이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텔레마코스는 따뜻한 마음(대문 바깥까지 간 것, 창을 받아 든 것, 환영 인사, 불안해하거나 식욕을 잃을까 염려한 것, 자기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 부지런히 오가는 것)과 귀중한 물건(안락의자, 황금 물 항아리, 은대야, 온갖 종류의 고기, 황금 잔, 포도주)을 아끼지 않고 멘테스의 모습을 한 아테나 여신을 환대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여신도 감동을 받아 마음을 열고 마침내 오디세우스 소식을 전하게 된다.

먼 곳으로부터 온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자기 집에 있는 것을 공유하는 마음이다. ‘낯선 이라도 자기 지붕 아래 있는 한 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주인에게 있다’라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나그네에게 적절한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환대는 편안하게 쉬고 잠잘 곳과 먹을 것, 마실 것을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위협과 피해를 당할 수 있거나 해로운 것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또 활력을 불어 넣어 즐거운 감정을 갖고 기쁘게 해야 한다. 따뜻한 배려와 호의로 마음을 얻는 것이 환대 정신(hospitality spirit)이다.

상호관계와 호혜성에 바탕을 둔 환대 정신이 위협 받고 있다.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바람에 물가, 소음, 쓰레기, 주차 등으로 고통을 받는 관광지 주민 사이에 나타난 관광공포증(tourist phobia)과 관광기피증(touristification: tourist + gentrification)이 그 예다. 국내에서도 관광객이 북새통을 이루는 북촌에서는 피켓 시위가 있었고 벽화로 잘 알려진 이화마을에서는 벽화에 페인트칠을 했다. 중국 관광객이 뜸해지자 제주 여행이 더 할 만하다고 한다. 올 여름에도 관광지 곳곳은 쓰레기 투척이나 낙서와 같은 관광객의 비매너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몰리면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진 주인이라도 손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소란스럽고 무례한 나그네는 반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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