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조산(祖山)인 북한산은 백운봉, 국망봉, 인수봉이 병립해 구름위에 돌출한 세봉오리가 우뚝 솟아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주산(主山)인 백악(白岳)은 북악산(北嶽山)이라고도 하며 마치 개화하기 직전의 모란꽃 봉오리와 같은 모양이다. 한양은 바로 백악이 북쪽의 주된 산(山)으로 현무(玄武)가 되고 그 좌우로 산이 뻗어서 바람을 막아주는 장풍국(藏風局)의 지세를 갖췄다. 오른쪽 산맥이 내려와 인왕산(仁旺山)을 일으켜 우백호를 만들었고 더 나가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을 거쳐 다시 남산으로 쳐어 안산(案山)을 만들어 주작(朱雀)을 만들면서 광희문(光熙門)에 이른다. 왼쪽으로 뻗은 산맥은 동쪽으로 내려와 혜화문을 거쳐 낙산(駱山)에 이르러 좌청룡을 만들었다. 또 수세(水勢)는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의 계곡물이 모여 서쪽에서 물들이 흘러들어 청계천을 형성하고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수구문(水口門)이 광희문이 된다. 따라서 한양은 장풍국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서출동류(西出東流)의 수세를 갖춘 우리나라의 3대 도읍지 중의 하나로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한양은 한반도의 핵심적인 중핵지(中核地)에 위치해 예로부터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전략적 요충지 및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된 곳이다. 백제 초기 잠시 수도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고려시대 문종에 이르러 도선비기(道詵秘記)의 영향을 받아 개국 후 160년이 지나 도읍(都邑)을 목(木)으로 옮겨야 한다는 기록에 따라 목멱산(남산)인 당시 주(州)였던 이곳을 남경(南京)으로 명칭이 승격됐고 신궁이 조성되면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그 후 공민왕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한양에 도읍을 정하기도 했다. 고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성계에 의한 조선이 건국되면서 수도 인 도읍의 입지가 거론됐고 충남 계룡산의 신도안에 잠시 도읍의 터를 만들었으나 하륜을 중심으로 한양입지론이 본격화되면서 신도안은 물 아래로 잠기고 조선의 도읍으로 한양의 시대가 시작됐다.

한양의 대궐 터 입지와 좌향을 놓고 이성계의 왕사(王師)인 무학대사와 개국공신이며 최측근인 정도전과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무학대사는 불교이면서 풍수의 사고를 접목해 주산을 인왕산으로 삼고 좌향을 동남방향으로 정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반해 정도전은 유교적 사고에 의하여 북악산을 주산으로 정하고 좌향을 정남향으로 정하고자 했다. 결국 외형과 질서를 강조한 정도전의 유교적 관점으로 도성(都城)이 만들어지게 됐다. 또 풍수에서 중요시하는 대문을 동서남북으로 질서 정연하게 만들었고 대문의 명칭도 유교의 다섯 가지 덕목인 오상(五常·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인용했다. 동대문을 흥인문, 서대문을 돈의문, 남대문을 숭례문, 북대문을 숙정문, 가운데를 보신각이라 하였다.

한양에 대해 세종 때에 최양선이 주산(主山)의 배정이 지나치게 건방(북서쪽)에 위치해 도성의 서쪽에 치우쳐 도시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개선되지 못했다. 광해군 때 이의신이 "한양(서울)의 국도는 지기(地氣)가 쇠(衰)하고 교하현(交河縣)이 길지(吉地)다"라는 상소를 올렸고 광해군 또한 현재의 파주 일대에 교하천도를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또 이중환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산세가 사람을 두렵게 함으로 살기(殺氣)가 있어 개성에 비해 못하며 명당 안의 명당수인 청계천의 물길이 너무 낮으면서 약하고 앞쪽인 관악산이 비록 한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으나 역시 너무 가까워 좌향을 정남향을 사용하기에는 좋은 편이 못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은 도읍지를 중심으로 고려의 개성, 여말선초의 신도안, 조선의 한양에 대해 살펴봤다. 도읍의 입지는 모두가 풍수의 음양오행에 따라 산세와 수세에 맞게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얻는 장풍득수국(藏風得水局)을 선정했다. 하지만 절대 왕조의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에 의해 중앙의 위치를 선정하지 못하고 건방(북서쪽)에 자리하여 도시 및 국가가 음양오행의 기운을 고루 받지 못하는 지세를 띠게 된다. 또 산세와 지세 가운데 유독 산세에 더 치중함이 나타난다. 산세는 정치를 의미하며 수세는 경제를 뜻하는 바 정치권력에 편중되고 경제인 부국에는 기반의 틀이 약함을 보인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인 국민이 주인인 현재의 수도는 절대 권력에 편중되지 않고 산세와 수세를 고루 갖추고 음양오행의 조화와 균형에 맞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새로운 수도의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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