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영화를 그리 자주 보는 편은 아니라서 명절 뒤끝이나 집안 행사 언저리에 가끔 아들이나 사위와 극장을 찾곤 한다. 이번 ‘택시운전사’ 관람은 교육연구기관인 대전교육연구소에서 주최한 회원 친목행사에 함께한 것이다. 아내는 당시 서울대 앞에서 외국원서 전문서점인 ‘서당골’을 운영하며 광주 출신 학생들에게 익히 들었고, 그 잔혹한 참상을 다시 보는 게 고통스럽다며 사양했다.

극장 주차장이 만원이라 주변을 두 바퀴나 돌다 정부 3청사 후문 앞에 겨우 주차를 했다. 상영시간에 맞추긴 했지만 자리가 맨 앞쪽이라서, 큰 화면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첫 장면부터 어지럼증을 느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독일 ARD방송국 카메라 기자 힌츠페터와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광주 취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간 5월의 광주를 다룬 영화들과 달리 외국인 목격자의 시선에서 광주의 참극을 담담하게 담아내 관객들의 호응도가 높은 듯하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가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 깜짝 관람을 하면서 흥행몰이에 탄력을 받아 이번 주말 천만 관객을 넘겨 금년 첫 천만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나는 대학원을 마치고 27살에 입대한 ‘할배’로, 원주의 한 향토사단 공병대에 배치됐다. 공병학교 교육도 받지 않은 어수룩한 ‘돌공병’이었다. 목욕탕을 직영하는 부대답게 배치받자마자 목욕탕에 가게 됐다. 불콰하게 취한 병장들에게 신고식을 하는데, 대학 졸업자라니 “너 때문에 우리가 뺑이 친다”며 수건을 건넸다. “머리에 묶고 시위할 때 구호를 외치라”고 다그쳐 그냥 서 있었다. 쪼그려 뛰기를 한참 하고서야 욕조에 들어갔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매일 이렇게 괴롭힌다면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하지만 막상 작업장에서 똑같이 땀 흘리며 막노동을 하다 보니 서로를 위할 줄 아는 게 공병대의 의리라서 곧 적응했다.

공병대 부사관엔 공수부대 출신이 많다. 특수훈련 중 부상당해 오는 것이다. 공병대에 폭파나 지뢰 매설 등의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인데, 5월 말쯤 광주 출신 공수부대 중사가 왔다. 우리 중대에 전라도 출신 사병이 많아 그랬는지, 그가 광주의 참상을 말했다. “야 진짜 징허더마. 총 맞고 대검에 찔린 시민들이 쫙 깔렸는디, 눈뜨고 볼 수 없당께. 나는 낙하훈련 중 부상당해 병원에 있어 작전에 나가지는 않았어야. 여그 온께 마음이 낫닿께.” 나는 며칠 전 받은 친구의 편지를 떠올렸다. 지금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인 이은봉은 편지에 ‘광주는 빨간 피로 물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광주를 알리려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고 있다’라고 했는데, 용케 보안 검열을 통과한 것이다.

‘택시운전사’ 흥행 못지않게 5·18 관련 가짜 뉴스 또한 극성이다. 영화에 나오는 독일 기자는 푸른 눈의 간첩이었고, 그를 도왔던 택시운전사는 안내와 경호를 책임진 북한 요원이라는 것이다. 출처는 칼럼니스트 김동일이 보수매체 ‘뉴스타운’에 기고한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은 간첩!’이란 글이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계엄군에 체포된 시민군들이 실제로는 북한 특수군이었다’라고 주장한 지만원 씨가 북한군 배후설을 주장한 바로 그 매체다. 지난 11일 광주지법은 지 씨와 ‘뉴스타운’에 “5·18 단체 등에게 8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최근 법원이 모두 33가지 내용이 진실을 왜곡했다며 배포 금지를 결정한 ‘전두환 회고록’도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난 오늘 처음 듣는데”라고 답했다가 스스로 말을 바꾼 것이다. 이런 가짜 뉴스와 거짓말을 보며, 지난 3월 영국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영화 ‘나는 부정한다’가 떠올랐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역사학자에 맞서 그 왜곡된 의도를 입증하는 역사학자 립스타트의 4년의 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의 제목에 생략된 목적어를 넣으면 이렇다. 나는 거짓이 승리하는 것과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부정한다. 5월의 진실 또한 왜곡과 거짓에 대한 적극적 부정을 통해 점차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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