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비서들 "무조건 웃어야한다" 스마일 증후군에 신체적-정신적 고충 토로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이라고 항상 친절하고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어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얘기할 때도 가식적인 미소로 대했어요."

"차를 타고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데 한 남자 직원이 '비서들이 임원들 차에 같이 타서 즐겁게 해줘야지. 임원들이 얼마나 외로움이 많은 사람들인데'라고 했어요."

비서직에 종사하는 사회초년생 여성들이 편견에 치우친 처우와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일 숙명여대에 따르면 이 학교 인력개발정책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박지연씨는 최근 학교에 제출한 학위논문 '대기업 신입비서의 감정노동에 관한 연구'에서 대기업 입사 2년 이하 비서 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대 1 심층면접을 토대로 이처럼 결론을 내렸다.

조사에 참여한 비서들은 자신들이 상사의 분노나 변덕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과 비서직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때문에 겪는 괴로움을 털어놨다.

한 비서는 "상사가 업무 때문에 예민할 때는 자신이 쓰는 연필 끝이 뭉툭하다는 등 사소한 일로도 잔소리를 한다"고 말했고, 다른 비서는 "상사가 법인카드를 잘못 쓰면 재무팀이 상사가 아니라 나에게 '딴지'를 건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물건을 둔 곳을 기억하지 못할 때 비서에게 화를 내고 욕설을 하는 상사도 있었고, 주문 후 제작·배송에 2주가 걸리는 물품을 다음 날까지 구매해 놓으라는 부당한 지시도 내려왔다고 비서들은 전했다.

지시했던 것을 갑자기 뒤집는다거나, 높은 사람 방문 시간에 맞춰 커피를 타주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라고 지시하는 사례도 있었다.

상사가 업무와 무관한 개인 사무를 시키는 '갑질'이나, 담당이 아닌 다른 상사가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엄연히 고유한 업무가 있는데도 "임원을 즐겁게 해주라"고 성희롱적인 발언을 일삼거나 "편안하게 대우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비꼬는 사람들도 초년생 비서들이 겪는 스트레스 원인이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사 참여자들 가운데는 비서학과를 졸업하는 등 비서직을 동경해온 이들도 많았지만 이같은 현실 때문에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비서는 "'이렇게까지 해서 이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항상 웃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가면성 우울증이라고도 불리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슬프거나 화가 날 때도 겉으로는 웃게 되는 증상)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변비에 시달린다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생리주기가 변했다는 호소도 나왔다.

조사대상자 대부분은 비서가 감정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비서가 업무 특성상 감정노동자가 아니라는 응답자들도 실제로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인정했다.

박씨는 논문에서 "신입 비서는 회사에 적응하고 업무를 숙련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다수는 바로 현장에 투입되기 때문에 감정노동과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며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 업무매뉴얼을 제시하는 한편 교육·복지 등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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