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후 대전도시철도 1호선 판암행 열차의 한 임산부 배려석에 중년여성이 앉아있고 맞은편 임산부 배려석에는 중년남성이 앉아 있다. 핑크카펫으로 눈에 확연히 띄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A 씨. 옆자리에 앉은 중년여성 B 씨가 이를보고 “여기는 임부들이 앉는 곳인데…”라고 조곤하게 말을 건넸지만 A 씨는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 또 다른 열차의 임산부 배려석에서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60대 여성 C 씨는 가까운 자리의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음에도 이를 지나쳐 먼 쪽에 있던 자리에 앉았다. C 씨는 “내가 임부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 앉았다. 임산부 배려석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하철에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5년이 흐른 가운데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 사이에서는 ‘임부’를 배려하거나 외면하는 대조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을 임산부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핑크카펫 ‘임산부 배려석'은 지난 2011년 한 임신부가 1인 시위에서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물살을 탔다. 대전지하철은 지난 2012년 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을 도입했고 서울도 지난해 7월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을 시작으로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을 만드는 등 확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시행 5년째를 맞은 임산부 배려석에 주인공만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 대신 일반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 임부는 임신한 티가 나지 않아 신체 불편에도 일반 승객들의 배려를 받기 쉽지 않다.

임신 7개월 차인 현은미(37) 씨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 임산부 배려석은 거의 비워있지 않고 일반인이 앉아 있다. 임신해서 배가 나오면 보고 비켜주는 분들이 있지만 초기 티가 나지 않을 때는 대부분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한다. 임신 초기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서 있어서 중간에 내려야 했던 적도 있다”며 “대부분 임산부는 말을 하기 어려워한다. 임부들이 배가 나오지 않은 기간이 임신기간의 절반 정도 되는 만큼 임산부 배려석은 임신한 사람들을 위해 비워뒀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임산부 배려 인식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중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0.9%에 불과했다. 임산부를 배려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임산부인지 몰라서(49.4%)’거나 ‘방법을 몰라서(24.6%)’가 대부분이었다. 일각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혼동이 없도록 임산부 배려석을 임산부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하철 승객 곽영순(76·여) 씨는 “임신 초기가 더 신체적으로 어려움에도 말을 못하는 때가 많다. 이들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놔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대전도시철도는 지난달 임산부석 홍보캠페인을 전개하고 올해 3월에 전동차 바닥에 빨간색 바닥시트를 까는 등 임산부 배려석 정착 분위기를 확산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대전도시철도 관계자는 “자율적으로 배려하는 문화가 조성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임산부 배려석뿐만 아니라 교통약자 배려석에도 임산부들이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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