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지금은 세상이 미쳐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유와 평화가 가득한, 서로 돕고 귀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바라던 때는 아주 고전스러운 시대의 것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 대신 파괴된 유토피아를 살아가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매우 소박하게,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높은 교육수준을 이룩하면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란 꿈을 꾸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을 느낀다. 지금 세계의 정황이 그러하다.

우리가 지금 외국을 여행하거나 외국에 있는 아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 사는 것이 안전한가? 전쟁의 위험은 없는가? 만약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속히 피신하여 나올 수 있는 준비는 하고 있는가?’ 그런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본다. 나는 한 번도 우리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느껴보지 못하였다. 북한에서 몇 차례 걸쳐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탄 시험발사를 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몇 번 북한에 대한 초토화논란을 일으켰고,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도 외국에 있는 이들이 느끼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파악이 둔해서일까?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내 바람이 크기 때문일까? 현실과 바람 사이에는 언제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지금 현실이다. 남한의 문재인 정부는 평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려고 무척 노력한다.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여기에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를 개발하여 미국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방어하려고 한다. 그런 북한에 대하여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무력응징을 하겠다고 소리치면서 때때로 다른 의견을 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의 북쪽과 멀리 미국에는 정신상태가 정상을 유지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정권의 정점에 앉아서 위험한 전쟁놀이와 불놀이는 하려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양측의 극단관점을 보는 세계의 언론들과 시민들의 맘은 불안하다. 그것으로 보면 분명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쟁은 합리적 판단에 의하여 일어나기보다는 어떤 불미스러운 불상사가 나타나서 일어나는 수도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이 하는 언행을 보아서 충분히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것도 사실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이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세력들이 한반도가 평화로운 상태나 통일된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긴장과 갈등이 있을 때, 그들에게는 언제나 국가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조종에 의하여 한반도의 정세가 풍랑이 일어나는 바닷물 위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요동치는 것이 오랜 역사의 현실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이 우방이라고 하지만, 이 문제에서만은 국가이기주의에 빠진 적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결국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한반도의 남북한 정권과 민중밖에는 없다. 그 외의 다른 세력들은 보조수단일 뿐이다. 지금 소위 한국의 보수층이라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미국을 아주 철저한 우방이요 친구로 보려고 하고 그렇게 믿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이야 말로 큰 착각이다. 자기들 나라에 이득이 있는 한만 우방이요 친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이들과 그 정권 이외에 다른 어떤 세력도 없다. 여기에서 독립된 나라와 민중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스로 평화를 이루고 통일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가 없는 나라나 정부나 민중은 결코 외부의 도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어떠한 강력한 외세라고 할지라도 그 나라 정부와 민중이 스스로 자신의 뜻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한다면 그것을 무시하고 맘대로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아무리 북한을 공격할 능력이 있고 의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한반도를 공격할 때는 우리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강조하는 것은 절대로 지나치거나 부당한 것이 아니라, 아주 지극한 정상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문제는 우리 남북한이 주도해 나가는 것이지, 어느 다른 세력의 정책에 업혀 갈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드나 핵무기 같은 무력으로가 아니라 평화의 정신으로라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런 것들이 정부나 대통령의 의지나 힘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모든 시민들이, 민중이 그와 같은 평화의지와 실천생활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민중의 맘이 더욱 더 그에 앞서야 한다. 그러므로 민중은 평화를 위하여 스스로 평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장해야 한다. 우리에게 나쁜 말을 하는 이들에게도 평화의 기운을 보내야 한다. 특히 북쪽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평화의지와 정신과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네가 잘하면 나도 잘해주겠다는 주고받는 식의 장삿속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냥 주고 기다리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남북한의 주민들이나 마을들 사이에 자매결연, 부문별 교류협력, 자유왕래를 할 수 있는 길을 트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그 길을 찾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정부도, 외부세력도 그에 따라 나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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