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0901이란 숫자가 9월 1일이 아니라 9시 01분처럼 보인다. 9월이 왔음이 어색하지 않을 법도 한데 벌써,란 말이 나온다. 8월이 더 길 줄 알았다.

아침, 라디오를 켰다. 역시나 바뀐 달 이야기, 가을 이야기가 샤샤샤… .
아내에게 얘기했다.

"라디오에서 '가을이 오면' 무지하게 많이 나오겠구만. 왠지 이 무렵엔 '의무감'으로 들어야할 것 같기도 하고 말야."

정확히 14분 뒤 라디오에선 익숙한 반주가 시작됐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1. 이문세 4집(1987)

노래는 흐르고,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아들이 물었다.

"이문세 아저씨야?" 
"응, 1987년이면 몇 년 전이지? 20년인가, 30년인가?"
"30년."
"30년 맞구나, ㅎㅎ 30년 전에 나온 노래야. 아빠가 네 나이 때 한창 듣던 노래야."

그랬다. 그 시절 밤낮 자나깨나 듣던 테이프. 이문세 4집.


앞면
1. 사랑이 지나가면 
2. 밤이 머무는 곳에  
3. 이별이야기 (with 고은희)
4. 그대 나를 보면
5. 가을이 오면  

뒷면
1. 깊은 밤을 날아서 
2. 슬픈 미소  
3. 굿바이
4. 그녀의 웃음소리뿐 
5. 어허야 둥기둥기

이문세는 3집(1985,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 앞서 엄인호의 소개로 '동반자' 이영훈을 만난다. 그리고 다음 앨범 4집 앨범은 모두 그의 곡들로 채워진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클래식과 팝을 접목하고, 시적이고 이미지가 연상되는 대중음악을 제시했다. 여기에 과잉과는 거리를 둔 이문세의 창법이 맞물렸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사랑이 지나가면', 서늘한 어둠이 오면 자연스레 흥얼거리게 되는 '밤이 머무는 곳에',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드라마 BGM으로 나오는 '이별이야기', 팝과 록을 접목해 흥겨운 비트를 선사한 '그대 나를 보면', 그리고 영원한 시즌송 '가을이 오면'이 앞면을 장식했다. 

"제 노래 중에 유일하게 몸을 흔들 수 있는 시간"이라며 콘서트에서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는 '깊은 밤을 날아서', 유달리 애착이 많이 갔던 '슬픈 미소', 이문세의 가성 '굿바이',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그녀의 웃음소리뿐'. 거기에, 당시엔 의무적으로 실어야했던 건전가요 '어허야 둥기둥기'까지 좋았다.

(보너스트랙) 아이유가 부르는 어허야 둥기둥기

#2. 30년

그러게, 30년이 됐다. 그 때 반항심 많았던 고딩은 오늘 30년 차이 나는 아들과 30년 전 노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오던 그 길은 잘 있을까,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내 몸의 일부였던 미니카세트와 늘어지도록 들었던 그때 그 테이프는 어디에 있을까, 가로등 불빛 그 골목들은 잘 있을까. 친하게 지냈던 그 여고생, '밤이 머무는 곳에'를 좋아했던 성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3. 가을 노래

'가을이 오면'은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한 라디오에서 이맘 때면 흘러나올 불후의 시즌송일 것 같다. 대개의 가을 노래가 늦은 가을, 단풍이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라면 가을이 시작되는 때의 노래는 가을이 오면이 최고일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곡,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래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렇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춰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 할까 말까 음... 

... 으로 시작하는 양희은의 노래 '가을아침'도 이 무렵 자주 듣는 노래다. 아이유가 부르는 가을아침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이 글을 쓴 17일 뒤인 9월 18일 데뷔 9주년을 맞은 아이유는 두 번째 리메이크 음반 '꽃갈피 둘' 수록곡 '가을아침'을 선공개 했다.)

#4. 사연 하나

"자, 다음은 대전 유성구에 사시는 아무개 씨가 보낸 사연입니다. 詩 한 편과 함께 신청곡을 보내 오셨군요."

찬 이슬 한 방울 
목덜미가 서늘한 바람 한 줌 
혹은 윤동주의 바람에 스치우는 별 하나 
혹은 이중섭의 말라비틀어진 닭 한 마리 풀벌레 명치끝에 걸리고서야 넘어가는 울음 소리 조금 
마른 하늘에서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잎 
죽은 말처럼 그렇게 삭아서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잎 
어쩐지 아무래도 좀 을씨년스러워 
비발디의 '네 계절'에서 '가을'만 따내고 
그리고 코스모스 한 송이 
또 감기약 몇 알
.....전봉건 시, 가을에

서늘한 바람에 꼭 닫힌 창문. 
더위 많이 타는 막내가 칭칭 감고 있는 이불. 
살짝살짝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은 코 끝. 
양희은 노래 '가을아침'이 듣고싶은 가을아침.

양희은이 부릅니다. '가을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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