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가을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하늘은 높고 고추잠자리 이리저리 날고 말(馬)들도 살이 찌며 지붕위의 박도 영글어 가는 계절이다. 응당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절기이다. 여름철의 태양이 숨 고르기를 하는 때이기에 사람도 한번 주변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점검해야 하는 때이다. 그래서 시인들의 감성을 통해 가을을 공감해보고자 한다.

①“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냐고/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 속에서 서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알아주지 않을 엄살을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운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목필균/시월의 편지) ②“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 달빛이 깊어지는 가을에는/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어인일인지 부끄러워진다, 딱히 죄 지은 것도 없는데/아무런 이유 없이 가을에게 자꾸만 내가 부끄러워진다.”(강인호/가을에는) ③“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안도현/가을의 소원)

④“가을, 황금 들녘, 천고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배반의 계절입니다/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이영균/솔로몬의 계절) ⑤“눈멀면, 아름답지 않는 것 없고/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눈물겨운 마음자리로도, 스스로 빛이 나네”(홍혜리/가을 들녘에 서서) ⑥“나무야, 너처럼 가벼워지면/나무야, 너처럼 헐벗겨지면/덕지덕지 자라난 슬픔의 비늘/쓰디쓰게 온통 떨구고 나면/이 세상 넓은 캔버스 위에/단풍 빛으로 붉게 물감을 개어/내님 얼굴 고스란히 그려 보겠네/나무야, 너처럼만 투명해지면.”(홍수의/가을이 오면)

⑦“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보면/톡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이해인/가을편지Ⅰ) ⑧“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데라도/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가을은 침묵하며 깊은 바다/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리하길, 가을은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 볼 일이다” (박제영/가을에는) ⑨“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그 빈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이성선/가을편지) ⑩“남쪽에선 과수원에 능금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산위엔 마른 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傷)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김현승/가을의 향기)

가을은 이렇게 많은 시(詩)가 만들어지는 계절이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가꾸었더니 가을엔 오곡백과 모든 곡식과 과일이 심은 대로 가꾼 대로 종류대로 열매와 알곡을 내 놓는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렇다. 하나님이 봄철을 주셨지만 씨앗은 사람이 뿌려야 한다. 모든 결과들은 신인합작(神人合作) 하나님과 인간들의 공동노력의 소산인 것이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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