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모처럼 맑은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인생의 꿈을 꾼다. 단지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노력을 하며 산다. 모두가 행복을 위해 노력하며 살지만 행복한 사회가 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확실히 이전보다 잘사는 건 분명하지만 오히려 사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뭔가 손에 쥐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올라서면 만족할 것 같은데 여전히 손에 쥐는 건 어렵고 어딘가에 오르는 건 힘들기만 하다. 가끔 꿈을 이뤘다는 사람도 있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크게 공감이 되질 않는다. 행복하다고 자위하면서 행복을 가장하는 것 같아 오히려 공허감이 느껴진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 만물은 일정한 목적이 있고 만물은 이 목적을 향해 생성되고 변화된다”고 말했다. 인간 역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목적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행복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보탤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 목적성과 자족성이 충족돼야 한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라면 현대인들이 행복하다고 여기기는 힘들 것 같다. 놀라운 경제적 풍요와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더 큰 욕망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욕망의 그릇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것을 느끼게 된다. 남과 비교하면서 더 큰 욕망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노력하는 자신을 끌어안기보다 더욱 채찍질하기만 한다. 남이 가진 것은 모두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하길 원한다면 더 많은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야 한다. 욕망의 그릇은 가볍고 단순하게 해야 한다. 이루지 못한 것이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아쉬워하기보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걱정과 근심이 현실의 삶을 압도한다 해도 자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교와 불교, 도교에도 능통해 기독교의 도인이라 불렸던 분이 있다. 2012년 94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화여자대학교강당에서 성경을 비롯한 유불선 경전을 풀어내는 연경반 강의를 40년 넘도록 하셨던 김흥호 목사다.

그 분의 책 ‘사람 삶 사랑’이란 책 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사람은 참삶을 통해 사랑이 된다. 더러운 물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맑은 물이 되듯이 사람은 삶을 통해 사랑이 된다” 언제나 삶이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삶이 유일한 희망이 된다. 삶을 통해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를 자문하고서 “자연엔 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연에는 자아가 없다는 것이다. 욕심과 이기심이 끼어들지 못해 아름답다는 것이다.

누군가 시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흩어져 있다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글자와 글자가 만나 단어를 만들고 단어가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내며 문장이 의미를 더할 때 비로소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의 아름다움은 글자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글자들끼리 맺고 있는 관계 때문에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어디 시만 그럴까. 사람도 그렇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경험만 하며 살아갈 순 없다.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지만 노력해도 쉽지 않은 것이 삶이다. 힘든 기억들이 오늘을 괴롭게 하고 고통을 견디는 것에 지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환란과 고통으로 찍었던 삶의 점들이 인생을 보다 선명하게 채색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어둡게 채색돼 밑그림이 되어줄 것이다. 즐겁고 기뻤던 추억은 밝은 색으로 채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 좋았던 추억들을 모두 끌어안을 때 아름다운 삶이 된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들이 관계를 맺고 조화될 때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간만에 맑은 하늘이 지친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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