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하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무지에 대한 자각’을 떠올린다. 이 말은 자각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고백에서 출발해 특정 문제(선, 아름다움, 정의, 친구 등)에 대한 명료한 인식을 추구하는 활동 자체를 가리킨다. 소크라테스는 주업이 그것이었고 그런 자신의 활동을 등에(말파리)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변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신이 이 나라에 달라붙게 한 사람입니다. 마치 몸집이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큰 몸집 때문에 좀 둔한 말을 깨어있게 하려면 등에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신은 저를 마치 이 등에처럼 이 나라에 달라붙어 있게 하여, 여러분을 깨우되, 하루 종일 어디나 따라가서 곁에 달라붙어 설득하고 따지기를 그치지 않게 한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문답법을 통해 귀잖게 따지는 일을 자임한 소크라테스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말의 등에와 같은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따지기 좋아하는 놈, 지 잘난 맛에 사는 놈, 말이 안 통하는 놈’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토론을 해 쓴 잔을 마셨던 많은 상대자들은 말문이 막히고 생각을 마비시키다는 의미에서 그를 ‘전기가오리’라고 비난했다. 소크라테스가 합리적 의사소통 문화가 빈곤한 한국사회에서 활동했다면 겸손함, 배려, 존중, 측은지심이 없는 부덕한 자로 십자포화를 맞았을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최고의 이론이성을 가진 자로 평가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철학, 이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사상가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서양문화의 합리성을 대변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감정을 죽인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모습이라면 생활 세계적 존재로서 인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자. 제자들에 의해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 만큼 말술을 먹은 사람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술 마시기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자였던 소크라테스는 취함의 즐거움을 알았을 것이다. 또 소크라테스는 전쟁에 3번 참여했는데 그 만큼 용기 있고 전우애를 발휘했던 인물도 드물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적진에서 제자를 구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음악을 사랑해 말년에 리라(Lyre)라는 현악기를 즐겨 연주하기도 했던 음악적 감수성이 있던 인물이다. 가정경제를 돌보는데 등한시하고 그로 인해 아내 크산티페에게 물병세례와 광장에서 옷이 찢겨지는 수모를 당했던 소크라테스도 마음 한 구속에는 미안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번 생각을 해 보자. 만약 사람들이 자기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자신에게 자문이나 컨설팅을 받은 사람이 어디 가서 ‘형편없는 내용’이었다고 떠들어 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소크라테스가 ‘감정 장애’가 아닌 이상 자신을 기소한 멜레토스, 아뉘토스, 류콘과 같은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배운 제자이고 한 사람은 자신의 명성을 듣고 온 정치가인데 자신을 고소한 사건에 참당한 감정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신화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서 인간 소크라테스는 마음의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그 두 사람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의 ‘시기심’과 편견이라고 말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다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들은 인간 소크라테스가 단순한 ‘이론 기계’만이 아니라 자기감정에도 충실한 인물이었음을 시사해준다.

논쟁가로서 소크라테스도 논리적 엄격성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의외로 대화 중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그의 수많은 대화편에는 감정을 지시하는 단어인 논쟁에서 이겼을 때의 ‘기쁨’, 논리가 빈약했을 때 ‘비웃음’이나 ‘수치심’, ‘부끄러움, 보편적 감정인 ‘인지상정’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대화 상대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선수이기도 했다. 프로타고라스와의 대화편에서 그것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나이가 한참 많은 프로타고라스를 계속 자극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멘트를 간간히 날린다. 자신이 제안한 단답식으로 대화하지 않으면 대화를 지속할 수 없다. 프로타고라스 당신처럼 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은 저속한 사람들의 하는 연기같이 생각된다. 애초에 약속한 대로 문제를 푸는 데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내 방식대로 토론하자. 중언부언하지 말고 스파르타식으로 간명하게 말해라. 용기를 잃지 말고 문제를 철저히 생각해 봐라. 한 번에 두 가지 주장을 동시에 하지마라. 대화방식도 맘에 안 들고 약속이 있어서 나는 가야한다. 진작 가고 싶었지만 칼리아스의 뜻을 존중해 지금껏 있었다. 이 멘트들은 더 나은 논쟁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 ‘당신하고 토론하는 것이 짜증난다’는 반응이다.

인간 소크라테스와 달리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식, 판단, 결정을 해야 할 때 지극히 ‘냉철한 이성’을 요구한다. 이성의 냉철한 사용에 대한 그의 신념은 ‘사느냐, 죽느냐’를 다투는 자신의 재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는 배심원이나 재판관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자기의 자매들이나 집안사람들을 모두 동원해 재판관들에게 애원하고 탄원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참나무나 돌에서 태어나지 않고 사람에서 태어났으며” 자신도 성장한 아들과 어른 남자아이 둘이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중에 어느 누구도 여기에 데려다가 여러분에게 내가 죄가 없다고는 투표를 해달라고 애원할 생각이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도덕성을 뽐내는 방식으로 ‘더 큰 호소’를 하기 위함도 아니고 무죄를 확신해서 그렇게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위와 같은 말을 던졌을까? 소크라테스는 재판이나 시시비비를 다루는 것,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경우에 감정을 개입시키면 옳은 인식과 판단 및 결정을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면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보았다.

자신이 재판관이나 배심원들에게 감정에 호소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소크라테스는 재판관 역시 감정에 휩쓸려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재판과는 옳고 그름을 판결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며 누구의 편을 들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재판 시 “재판관은 피고가 맘에 든다고 해서 정실에 치우쳐서도 안 되며 오직 법률에 의거해 판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옳은 판결을 위해 피고인과 재판관이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대해 박수를 보낼만하다. 그러나 그 박수는 원칙에 대한 박수 이상이 되기 어렵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했던 것처럼 피고인이 감정과 연민에 호소하거나 정상참작을 호소하지 않는 경우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법 논리가 아니라 자기연민의 감정과 자기방어 심리 때문이다. 피고인의 항소의 근본원인은 자기연민의 발동이다. 원고인의 항소사유인 형량이나 손해배상액이 낮다는 이유 뒤에는 피해를 입은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내 죄 값을 달게 받겠다’라고 말하는 죄수가 있다고 치자. 그의 한쪽 마음은 그런 마음이 있지만, 다른 한쪽 마음은 ‘형량의 경감’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그 기대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원초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양가적 감정인 것이다. 어떤 경우는 체념이 ‘죗값을 치루겠다’는 마음의 상태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체념이라는 감정도 자기애, 운명애의 하나의 감정 상태를 말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체념을 통해 자기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체념은 자기애의 또 다른 감정형식이다.

‘재판관이 재판 시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다. 원칙이고 규범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전무죄 현상이나 유사범죄임에도 불구하고 형량의 차이가 현격한 경우에 감정이 배제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거기에는 법률해석이라는 이름 뒤에 범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재판관의 인지적 감정이 들어있다. 또한 감정을 배제하지만 ‘합리적 고려’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법률 이외의 사회적 감정논리가 개입되기도 한다.

판결문 중에 ‘초법이고 죄를 반성한다는 점을 고려하여...’라는 판결근거들은 반성이라는 주관적 감정 상태에 대한 ‘반성하고 있다’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반성문의 내용에 근거해 판단한다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보증하기 어렵다. 동일한 반성문도 판사에 따라 반성의 정도를 다르게 측정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용의 판단에게 ‘감정’을 배제할 수 없다. 반성 자체는 감정 상태를 의미하며 반성문은 그러한 감정의 표현이다. 엄밀히 말해 ‘반성한다는 점을 고려해서’라는 판결은 감정에 대한 감정의 판단이다.

‘재판에서의 감정의 배제’라는 원칙이 갖는 문제들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가 말하는 원칙은 ‘보편적 법 감정’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가 말하는 감정의 배제는 재판이 정의의 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법리 논쟁’의 장으로 끝나게 되는 함정을 피해갈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법률 자체가 역사적이며 당대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표출한 것임을 잊고 있다. 최소 양형 기준은 그것을 법률로 규정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감정배제 원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인식, 판단, 결정, 재판 행위에서 감정을 원천적으로 배제시킬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대답은 회의적이다. 인식과 감정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이비드 흄과 그의 친구들은 소크라테스를 비웃을 것이다. 그의 원칙이 수많은 정치재판, 인민재판에 대해 도덕적 호소력을 갖지만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만약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감정의 코드로 읽으면 다음과 같은 감정들의 잔치이다. 그의 죄명 뒤에는 원고들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나쁜 감정이 숨어 있다. 그와 대화를 한 아뉘토스가 망신을 당한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밀레토스를 사주하며 고소장은 그가 직접 작성한다. 이 고소장은 원고의 원한 감정의 표현이다. 프리타네이온(영빈관)에서 식사대접 받아야 할 만한 일을 자신이 했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배심원들의 반감을 샀다. 조롱이 야기한 분노는 2차 판결에서 유죄찬성표 80표 추가라는 결과를 낳는다. 절친이자 제자인 크리톤의 탈옥 권유 동기는 ‘가족과 제자를 생각하라’는 감정에의 호소였다.

‘죽음 앞에서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제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다. 억울한 감정을 다스릴 것과 자기 자신이 죽음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채념 뒤의 안정된 심리의 표현이다. 독약을 마신 장면을 보고 울고 있는 크리톤, 아폴로도르스에게 조용히 할 것을 요청한 그의 모습은 명예에 대한 강한 애착의 감정을 의미한다. 그의 재판은불경죄와 청년 미혹 죄는 원한 감정으로 가득 찬 전형적인 종교재판과 정치재판의 혼합물이다. 소크라테스 사후에 아뉘토스는 아테네 밖으로 추방되고 밀레토스는 사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아테네에 소크라테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와 같이 그를 기리는 아테네 시민들의 행위는 그의 죽음에 대한 후회와 회한의 감정이 반영이다. 사상사에서 소크라테스를 이상화하고 그를 폄하하는 모든 철학은 자기 철학을 만들기 위한 이론적 욕구에서 비롯됐으며 그 배후에는 자기성향과 가치관에 따른 소크라테스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철학은 종국에 철학자의 성격과 개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윌리엄스나 호르크하이머의 주장을 상기하면 더 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하준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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