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현 대전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최근 우리 지역 학교 안팎에서의 성폭력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면서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좋은 사회를 물려줄 책임이 있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 중학생 이하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상황을 바라보며 점점 나이가 이른 시기에 중대 폭력 사태가 나타나고 있음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대전지역 10대 이하 자살률도 10만 명당 3.6명으로 전국 평균 2.3명의 1.5배에 달하며, 충남·부산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하고 있어 우리 지역 청소년의 삶의 여건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듯싶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최인재 연구위원은 청소년 자살률의 첫째 원인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을 꼽았다. 청소년들의 자살 충동 원인으로 39.3%가 성적·진학 문제라고 답했다는 것을 볼 때 최근 학교 안팎의 성폭력 사태가 자살로 이어지는 데 대해 학교 내에서부터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지역 각급 학교 성교육 예산을 살펴보면 그 대책이 허술함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대전 초·중·고 301개 교의 성교육 예산은 7530만 원으로 학생 1인당 377원이었다. 올해는 9380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5%가량 증가했지만 학생 1인당 성교육비는 512원에 불과하다. 학교당 평균 30만 원 정도 예산이 반영돼 있을 뿐이다.

대전시교육청에선 2013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학급당 연간 15차시의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고, 규정에 따라 3차시는 성폭력예방교육을 필수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 규모를 보면 성교육 예산이 필요한 외부 전문기관에 의한 교육보다 내부 교사들이 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부 교사들이 담당하는 성교육은 일반 교과과정 속에 포함해 하는 방식일 텐데 충분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늘 일상적인 교육 속에 성교육이 이뤄지기도 하겠지만 성교육 전문기관에서의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수준의 예산으론 전문기관에 의한 성교육은 무리다. 교육청은 모든 학교가 반별로 성교육이 이뤄진다고 보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성교육이 훨씬 많다. 대전의 한 성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지난해 대전지역 학교 성교육 현황을 보면 반별 수업은 전체 4만 7926명 가운데 1만 1302명으로 23.5%에 불과했고, 나머지 76.5%인 3만 6634명은 대규모 수업을 받았다.

대규모 수업은 강당에 모여 실시하거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화상수업을 실시한 것으로, 성교육으로선 가치가 없는 형식적 수업에 불과하다. 반별로 1시간 수업에 4만 원의 예산이 책정돼 전체 7200여 개 학급을 대상으로 실시할 경우 1차시만 하더라도 약 3억 원이 필요하고, 필수교육인 3차시의 성폭력예방교육을 모두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하려면 9억여 원이 필요한 데, 올해 9380만원의 예산으로는 반별 수업이 불가능하다.

학교별로 10만 원에서 182만 원까지 예산 차이가 크다. 올해 아예 성교육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은 학교도 46곳에 달한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성교육 예산을 학교 운영비에서 지출하도록 하고, 학교장 재량에 따라 편성하도록 했기 때문으로 운영비 절감 차원에서 이런 편차가 생기는 것이다.

의무교육을 규정에 뒀다면 이와 관련된 성교육 예산은 목적사업비로 편성하든지 아니면 교육청 차원에서 성교육 예산이 예산서에 반영됐는지 확인하고 미반영됐을 경우 시정을 요구하는 행정지도를 철저히 해야 한다.

11일부터 대전시의회는 임시회를 열고 시청 및 교육청 2차 추경예산을 심의한다. 시교육청은 2차 추경예산 편성으로 꿈의 예산 2조 원을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누리과정 예산 전액 지원 등에 힘입어 예산이 대폭 늘어난 것인데, 그동안 예산 부족으로 긴축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학교 현장과 미뤄뒀던 학생 복지를 위해 과감한 예산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한편으론 성교육만 추가하는 것으로 사태 예방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의 자살 원인 진단으로 입시 위주 교육환경을 든 것처럼 경쟁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교육혁신과 함께 교사들이 아이들의 생활 관리와 소통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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